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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507]논어 제3편 팔일 22장: 자왈 관중지기소재 혹왈 관중

by 스머프#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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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일편 22장

子曰 “管仲之器小哉!” 
자왈    관중지기소재
或曰 “管仲儉乎?”
혹왈    관중검호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왈    관씨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然則管仲知禮乎?”
  연즉관중지례호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왈   방군수색문    관씨역수색문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방군위량군지호    유반점   관씨역유반점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관씨이지례   숙부지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관중은 그릇이 작았도다!"
어떤 사람이 여쭈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집이 셋이나 있었고 가신들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으로 문을 가리는 법인데, 관중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고,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이 함께 연회를 할 때 술잔 놓는 자리를 둘 수 있는 법이데 관중도 또한 술잔 놓는 자리를 만들었었다. 그런데도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른다고 하겠느냐?"


* 管仲(관중): 제(齊)나라 대부. 이름은 이오(夷吾), 중(仲)은 그의 자. 공자보다 약 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으로 환공(桓公)을 도와 내정을 개혁하고 국력을 증강시킴으로써 패업을 완성시켜 주었기 때문에 공자는 그의 공적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의 위인은 별로 대단치 않게 여겼다.

* 管氏有三歸(관씨유삼귀): 관씨가 세 군데의 집을 소유하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① 집을 세 군데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② 세 나라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는 설. ③ 집안의 제사 때 세 가지의 희생을 썼다는 설. ④ 삼귀(三歸)라는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⑤ 삼귀대(三歸臺)라는 누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⑥ 삼귀라는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 ⑦ 조세를 많이 거두어들였다는 설. 여기서는 첫 번째 설을 취했다.

* 官事不攝(관사불섭): (관중의 가신들이) 공무를 겸하지 않다.
- 攝(다스릴 섭/잡을 섭, 편안할 녑(엽), 깃 꾸미개 삽, 접을 접): 겸직하다. 대부는 일반적으로 관원의 수가 많지 않아 한 관원이 여러 가지 일을 겸직했는데 관중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 焉得儉(언득검): 어찌 검소할 수 있는가.
- 焉(어찌 언, 오랑캐 이): '어찌'라는 뜻의 의문대사.
- 得(얻을 득, 덕 덕): '~할 수 있다'라는 뜻의 조동사.

* 然則(연즉): 그런즉, 그렇다면.

* 塞門(색문): 집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대문 앞에 막아 세우는 가림벽.
- 塞(변방 새, 막힐 색)

* 反坫(반점): 주대(周代)에 제후들이 회동할 때 다 마신 술잔을 엎어놓기 위하여 흙으로 만든 잔대(盞臺). 주인은 동점(東坫)에 잔을 놓고 객은 서점(西坫)에 잔을 놓았다.
- 坫(토대 점)

* 管氏而知禮(관씨이지례): 관씨가 예를 알았다면.

논어 제3편 팔일 22장


# 논어집주 해석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管仲의 器局이 작구나.”
혹자가 “管仲은 검소했습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管氏는 三歸를 두었으며 家臣의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管仲은 禮를 알았습니까?” 하고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의 임금이어야 병풍으로 문을 가리는데 管氏도 병풍(나무판자)으로 문을 가렸으며, 나라의 임금이어야 두 임금이 友好로 만날 적에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를 두는데 管氏도 술잔을 되돌려 놓는 자리를 두었으니, 管氏가 禮를 안다면 누가 禮를 알지 못하겠는가.”
 
관중은 제나라 대부로 이름은 夷吾(이오)이니, 환공을 도와 제후의 霸者(패자)가 되게 하였다. ‘器局(기국)이 작다는 것’은 성현의 大學(대학)의 道(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국량이 좁고 얕으며 규모가 낮고 협소하여 몸을 바루고 덕을 닦아 군주를 왕도에 이르게 하지 못함을 말씀한 것이다.

혹자는 器局(기국)이 작은 것이 검소함이 되는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 ‘三歸(삼귀)’는 臺(대)의 이름이니, 이에 대한 일이 《說苑(설원)》에 보인다. ‘攝(섭)’은 겸하는 것이니, 〈경대부의〉 家臣(가신)은 官屬(관속)을 다 갖출 수 없어서 한 사람이 항상 몇 가지 일을 겸하는데, 관중은 그렇지 않았으니, 모두 그 사치함을 말씀한 것이다.

혹자는 또 검소하지 않은 것이 예를 아는 것인가 하고 의심한 것이다. 병풍을 ‘樹(수)’라 하고 ‘塞(색)’은 蔽(폐, 가림)와 같으니, 병풍을 문에 설치하여 안과 밖을 가리는 것이다. ‘好(호)’는 우호적인 회맹을 이르고 ‘坫(점)’은 두 기둥 사이에 있으니, 술잔을 주고받아 마시기를 마치면 술잔을 그 위에 되돌려 놓는 것이다. 이는 모두 제후의 예인데 관중이 참람하게 썼으니, 예를 알지 못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공자께서 관중의 器局(기국)이 작다고 비판하셨으니 그 뜻이 깊다. 그런데 혹자는 이를 알지 못하고 그가 검소하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그의 사치함을 지적하여 검소하지 않음을 밝히셨으며, 혹자는 또 그가 예를 알았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그의 참람함을 지적하여 그가 예를 알지 못함을 밝히신 것이다. 이는 비록 器局(기국)이 작은 所以然(소이연, 까닭)을 다시 분명하게 말씀하지는 않았으나 그 작은 까닭을 여기에서 또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기를 ‘사치하고 예를 범하였으니, 그 기국이 작음을 알 만하다. 기국이 컸다면 스스로 예를 알아 이러한 잘못이 없었을 것이다.’ 하셨으니, 이 말씀을 마땅히 깊이 음미해야 한다.

소 씨(蘇軾(소식))가 말하였다. “자기 몸을 닦고 집안을 바르게 하여 나라에 미치면 그 근본이 깊고 그 미침이 원대하니, 이를 큰 기국이라고 한다. 양웅의 이른바 ‘큰 기국은 마치 規(규) · 矩(구) · 準(준) · 繩(승)과 같아 먼저 자신을 다스린 뒤에 남을 다스린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관중은 三歸(삼귀)와 反坫(반점)을 두었고, 환공은 안으로 여섯 명의 여인을 사랑하면서 천하에 패자가 되었으니, 그 근본이 진실로 이미 얕았다. 〈그리하여〉 관중이 죽고 환공이 죽자, 천하가 다시는 제나라를 宗主(종주)로 삼지 않은 것이다.”

양 씨(楊時(양시))가 말하였다. “부자께서 관중의 공로를 크게 여기셨으나 그 기국을 작게 여기셨으니, 王者(왕자)를 보좌할 만한 재주가 아니면 비록 제후를 규합하여 천하를 바로잡았더라도 그 기국은 칭찬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道學(도학)이 밝지 못하여 王道(왕도)와 霸道(패도)의 구분을 뒤섞어 한길로 삼았다. 이 때문에 관중의 기국이 작다는 말씀을 들으면 검소한가 하고 의심하고, 검소하지 않았음을 말씀해 주면 또 그가 예를 알았는가 하고 의심하였으니, 이는 세상이 부정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함을 功(공)으로 여겨 법칙대로 할 줄을 알지 못해서이니, 그 기국이 작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일편 22장 (논어집주, 성백효)

[#507]논어 제3편 팔일 22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공자는 관중이 아무리 큰 공(제나라 대부로서 환공을 도와 제후의 패자가 되는데 공헌함)을 세웠어도 신하에 불과한데 군주와 똑같은 생활을 누리려고 하였으니 검소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집도(부인도) 사치스럽게 셋이나 있고 가신들도 겸직이 없었으니 검소하지 않았고, 임금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관중도 똑같이 누리려는 것을 보았을 때 예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중은 도(道)와 인물됨이 부족하여 그릇이 작다고 평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관중은 제나라 환공의 재상으로 환공을 도와 천하의 패권을 잡게 만든 명재상인데 공자가 그릇이 작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검소했다는 뜻이냐고 물었고 또 예를 아는 사람이었냐고 궁금해한 것이 대한 대답이다. 

공자는 관중의 정치적인 능력과 그 공적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사치스럽고 분수를 모르는 관중이 예를 안다고 하면 도대체 누가 예를 모른다고 하겠느냐고 비판하였다. 자신의 분수를 넘어선 관중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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