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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502]논어 제3편 팔일 17장: 자공 욕거곡삭지희양 자왈 사야

by 스머프# 2025.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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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일편 17장

子貢, 欲去告朔之餼羊. 
자공   욕거곡삭지희양
子曰 “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
자왈    사야  이애기양   아애기례

자공이 매월 초하루에 지내는 곡삭제에서 희생으로 양을 바치는 것을 없애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그 예를 아낀다."


* 子貢, 欲去告朔之餼羊(자공, 욕거곡삭지희양): 자공이 초하루를 알리는 의식의 희생양을 없애려고 하다.
- 告朔(곡삭): 연말에 천자가 내년의 책력을 제후들에게 나누어주면 제후들이 이를 받아 선조의 종묘에 보관해 두었다가 매월 초하루에 양을 희생으로 삼아 종묘에 고하던 의식. 노(魯)나라는 문공(文公) 때부터 초하루를 알리는 의식은 폐지했지만 양을 바치는 일은 계속했다. 자공은 초하루를 알리는 의식을 거행하지 않을 바에야 양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告(고할 고, 뵙고 청할 곡, 국문할 국): 고하다(告--), 알리다. 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 朔(초하루 삭): 초하루, 음력(陰曆) 매월 1일. 정삭(正朔: 정월 초하루). 처음, 시초(始初).
- 餼羊(희양): 희생으로 쓰는 양. 제사 때 올리는 희생양.
- 餼(보낼 희): (음식을) 보내다. 쌀. 녹봉(祿俸: 벼슬아치에게 주던 급료). 희생(犧牲).

* 賜也, 爾愛其羊(사야, 이 애기양): 사, 네가 그 양을 사랑하다.
- 賜(줄 사): 주다. 하사하다(下賜--). (은혜를) 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 也(야): 음절을 조정하고 어기를 고르는 어기조사.
- 爾(너 이/꽃 많고 성한 모양 이): 이인칭대사.
- 其(기): 告朔(곡삭)을 가리키는 인칭대사.

논어 제3편 팔일 17장


# 논어집주 해석

子貢이 초하룻날 〈太廟에〉 告하면서 바치는 희생羊을 없애려고 하자,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賜야! 너는 그 羊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그 禮를 아까워하노라.”

告朔(곡삭)의 예는 옛날에 천자가 항상 季冬(계동, 섣달)에 다음 해 열두 달의 月朔(월삭, 초하루가 표기된 달력)을 제후들에게 반포하면 제후들은 이것을 받아서 祖廟(조묘)에 보관하였다가 매월 초하룻날이 되면 特羊(특양, 한 마리의 양)을 가지고 조묘에 고하고 청하여 시행하였다. ‘餼(희)’는 날고기 희생이다. 노나라는 문공 때부터 비로소 視朔(시삭, 초하루에 군주가 친히 告由(고유)하는 것)을 하지 않았으나 有司(유사, 담당 관원)가 아직도 이 양을 바쳤다. 그러므로 자공이 이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愛(애)’는 惜(석)과 같다. 자공은 그 실상이 없이 함부로 낭비함을 아까워한 것이다. 그러나 예가 비록 폐지되었더라도 羊(양)이 남아 있으면 오히려 기억할 수 있어서 복구될 수 있거니와, 만약 그 羊(양)마저 함께 없애버린다면 이 예가 마침내 없어질 것이니, 공자께서 이 때문에 아까워하신 것이다.

양 씨(楊時(양시))가 말하였다. “告朔(고삭)은 제후가 임금(천자)과 어버이(조상)에게 명을 稟(품, 여쭈어 허락을 받음)하는 것이니, 예의 큰 것이다. 이때 노나라는 군주가 초하루에 친히 고하지 않았으나 羊(양)이라도 남아 있으면 告朔(고삭)이란 명칭이 없어지지 않아 그 실상을 이로 인해 거행할 수 있으니, 이것이 부자께서 아까워하신 까닭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일편 17장 (논어집주, 성백효)

[#502]논어 제3편 팔일 17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예의 보존을 중시하는 공자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말이다.
곡삭(告朔)이란 매월 초하루에 사당에 제사를 지내며 그 달의 할 일이 담긴 달력을 청하는 의식이다. 본래 연말에 천자가 제후에게 달력을 주면, 제후는 이것을 자신의 사당에 간직해 두고 매월 초하루에 곡삭제를 지내고 달력에 따라 일을 행했다고 한다.

당시에 달력이란 단순히 날짜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에 따라 인간의 삶을 조정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었으므로, 달력의 제정과 반포는 현실 사회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노나라에서는 곡삭제가 행해지지 않는데도 관리들이 희생양을 바치는 풍습은 계속되었기 때문에 자공은 이를 없애자고 한 것이었지만, 공자는 오히려 곡삭제를 지내는 예가 다시 살아나야 함을 암암리에 역설한 것이다.

자공은 제사는 지내지 않으면서 양만 잡는 것은 형식만 남은 낭비라고 생각해서 그 희생을 없앴으면 한 것이나, 공자는 곡삭의 경우는 제후가 천자와 조상에게 명을 받는 것을 형상화하는 예이기에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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