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편 9장
子曰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자왈 오여회언종일 불위여우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퇴이성기사 역족이발 회야불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안회와 함께 하루종일 이야기를 해도 그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뒤에 그가 생활하는 것을 보니, 또한 그 내용을 충분히 실천한다. 안회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 回(회): 성이 안(顔), 자가 자연(子淵)이고 回(회)는 그의 이름이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문십철의 한 사람. 공자가 가장 총애한 제자로 공자보다 30세 아래였다. 29세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32세에 죽었다.
* 退而省其私(퇴이성기사): 그가 물러가고 나서 그의 사사로운 면을 살피다.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 돌아와서 그가 '사적인 생활'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가를 잘 살펴본다는 것이다.
* 亦足以發(역족이발): 역시 (나의 뜻을) 발양하기에 족하다. 공자에게서 들은 내용을 가지고 충분히 실천에 옮긴다.
- 足以(족이): '~하기에 족하다, ~하기에 충분하다'라는 뜻의 조동사. 원래 조동사 足(족)과 수단·방법을 표시하는 전치사 以(이)가 결합된 형태로 '족히 그것으로써 ~할 수 있다'라는 뜻인데 전치사 以(이) 뒤에 올 목적어가 생략됨으로써 아예 조동사로 바뀐 것이다.
* 回也(회야): 也(야)는 음절을 조정하고 어기를 고르는 어기조사.
# 논어집주 해석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顔回와 더불어 온종일 이야기를 함에 내 말을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더니, 물러간 뒤의 사생활을 살펴보건대 또한 충분히 發明하니, 顔回는 어리석지 않구나!”
回(회)는 공자의 제자이니, 성은 顔(안)이요 자는 子淵(자연)이다. ‘不違(불위)’는 의견이 서로 위배되지 않아 받아들이기만 하고 질문과 논란이 없는 것이다. ‘私(사)’는 한가로이 혼자 거처함을 이르니, 나아가 뵙고 묻는 때가 아니다. ‘發(발)’은 말씀한 바의 이치를 발명함을 이른다.
내가 스승에게 들으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안자는 자품이 침잠하고 순수하여, 성인(공자)에 대해서 체단(體裁(체재))이 이미 갖추어졌다. 그리하여 부자의 말씀을 들음에 묵묵히 이해되고 마음에 깨달아져서 닿는 곳마다 〈막힘이 없이〉 환하여 스스로 조리가 있었다. 그러므로 종일토록 말씀함에 다만 어기지 않아 어리석은 사람과 같음을 볼 뿐이었는데, 물러간 뒤에 그의 사사로이 거처함을 살펴보니, 일상생활에서 動(동)하고 靜(정)하며 말하고 침묵하는 사이에 모두 충분히 부자의 도를 발명하여 평탄히 행해서 의심이 없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뒤에야 그가 어리석지 않음을 아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위정편 9장 (논어집주, 성백효)
안회(안연)는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제자로서 특히 덕행(德行)으로 뛰어났고 공자가 가장 총애하는 수제자였다. 공자가 안회를 초창기에 봤을 때는 가르침을 받고도 아무 반응이 없어 혹시 아둔하여 이해를 못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었다. 후에 공자가 안회를 살펴보니 배운 것을 빠짐없이 숙지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어리석은 제자가 아님을 알았다고 하였다.
토론식 교육에서 질문을 하지 않고 단지 스승이 하는 말을 어기지 않고 따르기만 한 제자를 처음에는 주관도 없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어리석은 학생으로 보았다. 알고보니 듣는 바를 바로바로 이해했기에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없었고 배운 바를 반드시 실천하는 진정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안회는 총명하였고 언행일치를 하였으며 학문을 즐기는 제자였다. 공자가 안회를 자신만큼 호학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을 만큼 그를 인정하였고 칭찬하였다.
안회는 말 그대로 하나를 알면 열가지를 깨닫는(聞一知十) 총명한 사람이었으나 집안이 너무도 가난하여 밥을 굶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학문과 덕행을 키우는데 전념하였다. 결국 젊은 나이(32세?)에 요절하였다. 이에 공자는 하늘이 날 버리는구나라고 통곡을 하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