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공편 23장
叔孫武叔語大夫於朝曰 “子貢賢於仲尼.”
숙손무숙어대부어조왈 자공현어중니
子服景伯以告子貢.
자복경백이고자공
子貢曰 “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竅見室家之好.
자공왈 비지궁장 사지장야급견 규견실가지호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부자지장수인 부득기문이입 불견종묘지미 백관지부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
득기문자혹과의 부자지운 불역의호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하기를 "자공이 중니(공자)보다 현명하다"라고 하였다.
자복경백이 이 말을 자공에게 알려주자, 자공이 말하였다.
"궁실의 담에 비유하자면 나의 담은 어깨 정도의 높이이므로 집안의 좋은 것들을 엿볼 수 있지만, 선생님의 담은 몇 길이나 되므로 그 문을 찾아내서 들어가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많은 관리들의 풍성함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문을 찾아낸 사람은 아마도 적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또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叔孫武叔(숙손무숙): 노나라의 대부. 이름은 주구(州仇)이고 武(무)는 그의 시호, 叔(숙)은 그의 자이다.
* 子服景伯(자복경백): 노나라의 대부로 성이 子服(자복), 이름이 하(何), 자가 伯(백)이고 景(경)은 그의 시호이다.
* 賜(사): 자공의 이름. 단목 사(端木賜, 기원전 520년 ~ 기원전 456년?). 중국 춘추시대 위나라의 유학자, 관료. 공자가 아끼는 공문십철 중 한 사람. 말솜씨와 장사 및 정치적 수완이 뛰어남.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고 공자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준 인물이다.
- 譬(비유할 비): 비유하다. 깨우치다. 인도하다. 깨닫다.
- 牆(담 장): 담. 담장. 경계. 관을 덮는 옷.
- 肩(어깨 견, 여위고 약할 흔): 어깨, 어깨뼈.
- 竅(구멍 규): 구멍. 구멍을 뚫다. 통하다, 소통하다. 엿보다, 들여다보다.
- 仞(길 인): 길(7~8척, 높이의 단위, 1척은 22.5cm), 여덟 자. (높이나 길이를) 재다. 승인하다(承認--).
- 廟(사당 묘): 사당. 묘당(廟堂: 종묘와 명당을 아울러 이르는 말). 빈궁(殯宮), 빈소(殯所).
- 宜(마땅 의): 마땅하다, 알맞다. 마땅히 ~하여야 한다. 화목하다, 화순하다.
* 或寡矣(혹과의): 아마 적었을 것이다.
- 矣(의): 동작이 이미 완료되었거나 상황이 이미 끝났음을 표시하는 어기조사.
* 夫子之云(부자지운): 선생이 말한 것.
- 夫子(부자): 叔孫武叔(숙손무숙)에 대한 존칭.
# 논어집주 해석
叔孫武叔이 조정에서 大夫들에게 말하기를 “子貢이 仲尼보다 낫다.” 하였다.
子服景伯이 이것을 子貢에게 말하자, 子貢이 말하였다. “궁궐의 담장에 비유하면 나(賜)의 담장은 어깨에 미쳐 집안의 좋은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夫子의 담장은 여러 길이어서 그 문을 얻어 들어가지 못하면 宗廟의 아름다움과 百官의 많음을 볼 수가 없다.
그 문을 얻는 자가 혹 적으니, 夫子(叔孫)의 말씀이 당연하지 않은가.”
무숙은 노나라 대부이니, 이름이 州仇(주구)이다.
담장이 낮고 집이 얕은 것이다.
일곱 자〔尺(척)〕를 仞(인)이라 한다. 그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니, 담장이 높고 궁궐이 넓음을 말한 것이다.
여기의 夫子(부자)는 무숙을 가리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장편 23장 (논어집주, 성백효)
자공은 공자를 스승으로 모실 당시 첫 해엔 자신이 공자보다 낫다고 여겼고 그다음 해엔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며 3년이 지나자 비로소 공자에 미치지 못함을 알면서 그가 성인(聖人) 임을 알았다고 전한다. 자공의 스승에 대한 칭찬과 존경의 마음이 엿보이는 문장이다.
위나라의 대부인 숙손무속의 말을 역시 위나라 대부인 자복경백이 자공에게 알린다. 자공, 자네가 자네의 스승인 공자보다 여러 면에서 더 나은 것 같다는 말을 대부들이 한다고. 그러자 자공은 궁궐의 담의 높이를 비유로 들었다. 자신의 담은 어깨너머로 안을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경지이지만 스승인 공자의 담은 매우 높아서 아무나 들여다 볼 수 없고 들어가는 문조차 쉽게 찾을 수 없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일갈한다.
자공은 매우 총명하고 외교적인 수완이 뛰어났으며 통찰력과 이재에도 밝았다. 그래서 공자는 자공의 이런 점으로 인해 자만심을 가질까 봐 늘 경계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자공은 처음엔 공자를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지만 가르침을 받으면 받을수록 공자를 존경하고 따랐다. 공자의 죽음 후 3년상을 지내고 다시 3년상을 지낼 만큼 공자를 흠모하고 숭앙했다.
따라서 위나라 대부들의 공자의 평가를 폄하하는 하찮고 천박한 이야기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너희들은 나의 스승인 공자의 높은 경지와 위대함을 엿보기는커녕 흉내조차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비유하면서 말하였다.
상대방을 무조건 헐뜯는 시간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힘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