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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435]논어 제19편 자장 18장: 증자왈 오문저부자 맹장자지효

by 스머프#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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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편 18장

曾子曰 “吾聞諸夫子: 孟莊子之孝也, 
증자왈    오문저부자   맹장자지효야
其他可能也,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 是難能也.”
기타가능야    기불개부지신여부지정     시난능야

증자가 말하였다.
"내가 선생님께 들으니 '맹장자의 효도 중에서 다른 것은 가능할지라도, 아버지의 신하들과 정책을 바꾸지 않았던 것은 정말로 하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셨다."


* 孟莊子(맹장자): 노나라의 대부 중손속(仲孫速). 맹씨 가문의 6대 종주. 그는 부친 맹헌자(孟獻子, 이름: 蔑(멸))이 죽은 뒤에도 4년간 계속하여 부친이 쓰던 가신을 그대로 쓰고 부친의 정책을 그대로 실시했다. 맹장자의 다른 효행들도 비록 칭찬할 만하나 모두 이 일의 어려움만은 못한 것이었다.     

* 是難能也(시난능야): 이것은 하기 어렵다.
- 是(시):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기불개부지신여부지정)을 가리키는 지시대사로 其不改父之臣與父之政(기불개부지신여부지정)이 외위주어(外位主語)이고 是(시)가 본위주어이다.

* 其他可能也(기타가능야): 그 중의 다른 것은 해낼 수 있다.
- 其(기): 孟莊子之孝(맹장자지효)를 가리키는 인칭대사.

논어 제19편 자장 18장

# 논어집주 해석

曾子가 말씀하였다. “내가 夫子께 들으니, ‘孟莊子의 孝는 그 다른 일은 〈다른 사람이〉 능히 할 수 있으나 아버지의 신하(가신)와 아버지의 政事를 고치지 않은 것은 능하기 어렵다.’ 하셨다.”

맹장자는 노나라 대부이니, 이름이 速(속)이다. 그 아버지는 獻子(헌자)이니, 이름이 蔑(멸)이다. 헌자가 훌륭한 덕이 있었는데, 장자가 아버지의 신하를 등용하고 그 정사를 그대로 지켰다. 그러므로 다른 효행들도 비록 칭찬할 만한 것이 있었으나 모두 이 일의 어려움만 못한 것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장편 18장 (논어집주, 성백효)

[#435]논어 제19편 자장 18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노나라의 대부인 맹장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3년상이 지나도록(4년간, 맹장자는 부친의 사망 후 4년이 지나고 나서 사망함) 부친의 신하를 그대로 등용했으며 아버지의 정책도 바꾸지 않고 시행했다. 맹장자의 효는 다른 사람들도 능히 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신하와 아버지의 정사를 고치지 않은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효성이 지극했다는 말이다. 

공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道)를 바꾸지 않으면 효자라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새 사람이 집권하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대부분 자기 쪽의 사람으로 교체하고 정책도 개혁하기 마련이다. 맹장자는 천하의 효자였으므로 (물론 아버지의 훌륭한 정치도 한몫했겠지만) 아버지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부리던 가신들도 계속 등용하였다. 그만큼 아버지를 공경하고 효심이 깊은 까닭이었다.

맹장자의 부친인 맹헌자는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이 주군으로 모시던 분이었다. 맹헌자는 (노나라의 삼환 중 하나인 맹손씨) 집안의 세력을 내세우지 않고 덕으로 사람과 교우했고 세금을 포탈하는 신하를 곁에 두지 않았으며  또한 인정 없는 포악한 사람을 등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덕망이 높았고 훌륭한 인품으로 덕치를 하였기 때문에 맹장자도 아버지를 공경하고 존경하였다.

부모 살아 생전에도 하기 힘든 효를 돌아가신 뒤까지 부모님의 유지를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제후들도 부모상을 3년까지 지키는 사람이 없던 시대였다. 그럼에도 맹장자는 삼년상은 물론이고 부친과 함께 했던 가신들과 정사(政事)들까지도 받들어 유지시켰다는 것은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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