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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287]논어 제14편 헌문 9장: 자왈 위명 비심초창지 세숙토론

by 스머프#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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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문 9장

子曰 “爲命, 裨諶草創之, 
자왈    위명   비심초식지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세숙토론지   행인자우수식지
東里子産潤色之.”
동리자산윤색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정나라에서 사신이 지니고 갈 외교문서를 만들 때는 비심이 초안을 작성하고, 세숙이 검토하며 논의하고, 행인인 자우가 문장을 다듬고, 동리의 자산이 매끄럽게 손질하였다."


* 爲命(위명): 외교 사령(外交辭令)을 만들다.
- 命(명): 정부의 공문서. 여기서는 정(鄭) 나라가 다른 나라에 보내는 외교 사령.

* 裨諶草創之(비심초창지): 비심이 그것을 기초하다.
- 裨諶(비심): 정나라의 대부. 이름은 조(竈)이고 諶(심)은 그의 자이다.
- 裨(도울 비): 돕다, 보좌하다, 더하다.
-  裨(미더울 심): 미덥다, 믿다, 정성.
- 草創(초창): 기초하다.
- 草(초): 처음으로, 대략적으로.
- 創(창): 창시하다.

* 世叔(세숙): 정나라의 대부. 이름은 유길(游吉). 자태숙(子太叔)이라고도 한다. 그는 40여 년 동안 정나라를 다스렸는데 외교 수완이 뛰어나 강대국인 진(晉)·초(楚)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도 전란의 피해를 예방했다. 그가 죽었을 때 공자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行人子羽修飾之(행인자우수식지): 행인 자우가 그것을 가다듬고 꾸미다.
- 行人(행인): 외교 업무를 관장하는 관직의 이름.
- 子羽(자우): 정나라의 대부 공손휘(公孫揮)의 자.
- 飾(꾸밀 식/경계할 칙)

* 東里(동리): 자산이 살았던 동네의 이름.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 자산을 '동리자산'이라고도 불렀다.

* 子産(자산): 정나라의 대부 공손교(公孫僑)의 자. 당시 정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뛰어난 정치가였다. 인습적인 귀족정치를 배격하고 솥[鼎]에 법조문을 새겨 중국 역사 최초로 성문법에 따라서 법치주의를 시행한 인물로 평가된다. 

* 潤色(윤색): 윤내고 색칠하다.

논어 제14편 헌문 9장


논어집주 해석

裨諶(비심) 이하 네 사람은 모두 정나라의 대부이다. ‘草(초)’는 대략이요 ‘創(창)’은 처음 만드는 것이니, 처음 초고를 만듦을 이른다. 
世叔(세숙)은 游吉(유길)이니, 《春秋左傳(춘추좌전)》에는 子太叔(자태숙)으로 되어 있다. 
‘討(토)’는 찾고 연구함이요, ‘論(논)’은 강론함이다. ‘行人(행인)’은 사신을 맡은 벼슬이고 子羽(자우)는 公孫揮(공손휘)이다 ‘修飾(수식)’은 더하고 줄이는 것이다. 東里(동리)는 지명이니, 子産(자산)이 거주한 곳이다. ‘潤色(윤색)’은 문채를 더함을 이른다.

정나라에서 사명을 만들 적에 반드시 이 네 현자의 손을 거쳐 이루어져서 자세히 살피고 정밀하여 각기 所長(소장)을 다하였다. 이러므로 제후에게 응대함에 실패하는 일이 적었으니, 공자께서 이것을 말씀한 것은 좋게 여기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헌문편 9장 (논어집주, 성백효)

[#287]논어 제14편 헌문 9장:[『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패권을 다투던 강국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있던 정나라는 네 명의 대부[비심, 세숙, 자우, 자산]가 정치를 했을 때 그들의 뛰어난 외교 수완으로 전란의 피해를 예방하였으며 국력을 신장시킬 수가 있었다. 이 네 명의 대부들은 네 단계 [초창 →토론 → 수식 → 윤색]를 거쳐 서로 합심하여 최선의 노력으로 최고의 외교 문서를 작성하였다.

외교 문서는 양국 간의 중대한 사안을 포함하므로 단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정나라의 대부인 비심이 초안을 작성하면 세숙이 이를 검토하여 논의를 하였다. 그 후에 외교 업무를 관장했던 자우(공손휘)가 문장을 다시 다듬었고 공손교(자산, 공자와 동시대의 인물로 공자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 중의 한사람)는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또 한 번 매끄럽게 다듬어 신중하게 문서를 작성했다. 이 네 사람을 거쳐서야 외교 문서는 비로소 완벽하게 작성되었고 이로써 초강국들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들의 사심 없는 협업으로 인해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던 정나라는 전쟁의 위험을 비껴갔으며 오히려 정나라의 국력을 높여 부강한 나라를 이룩할 수 있었다. 국가 안보와 국익을 위해서는 이처럼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등용하여야만 나라가 강건해지고 국민들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인재 양성에 힘쓰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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