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문 2장
“克伐怨欲, 不行焉, 可以爲仁矣?”
극벌원욕 불행언 가이위인의
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자왈 가이위난의 인즉오부지의
"남을 이기려 하고, 자기를 과시하고, 남을 원망하고, 욕심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인(仁)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인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 克伐怨欲(극벌원욕): 4가지의 악덕(惡德).
이기는 것을 즐겨하고 [克, 이길 극], 스스로 자기 재능을 자랑하며 [伐, 칠 벌/치다, 베다, 공적, 공훈, 자랑하다], 원망하고 화를 잘 내며 [怨, 원망할 원/쌓을 온], 물욕(物慾)이 많음 [欲, 하고자 할 욕].
* 可以爲仁矣(가이위인의): 어질다고 할 수 있는가.
- 爲(위): ~라고 하다. 謂(위)와 같다.
- 矣(의): 필연의 결과를 표시하는 어기조사.
논어집주 해석
이 또한 원헌이 자신의 능한 것을 가지고 질문한 것이다. ‘克(극)’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고, ‘伐(벌)’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고, ‘怨(원)’은 분하게 여기고 원망하는 것이고, ‘欲(욕)’은 탐욕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가 〈 마음속에 〉 있는데도 능히 제재하여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어렵다고 이를 만하다. 仁(인)은 천리가 渾然(혼연, 완전)하여 저절로 네 가지의 累(루)가 없으니, 행해지지 않음을 굳이 말할 것이 없는 것이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사람으로서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하는 일이 없는 것은 오직 仁者(인자)만이 능할 수 있고, 이러한 것들이 마음속에 있는데도 그 情(정)을 제재하여 행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이 또한 능하기 어려우나 仁(인)이라고 이르는 것은 안 된다. 이는 성인이 열어 보여주기를 깊이 하신 것인데, 애석하다. 원헌이 다시 묻지 못함이여!”
혹자는 말하기를 ‘네 가지가 행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진실로 仁(인)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또한 어찌 이른바 克己(극기)하는 일과 仁(인)을 구하는 방법이란 것이 아니겠는가.’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 버려서 禮(예)로 돌아간다면 私慾(사욕)이 남아있지 않아서 천리의 본연을 얻게 될 것이나, 만일 단지 제재하여 행해지지 않게만 할 뿐이라면 이는 병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는 뜻이 있지 아니하여 가슴속에 몰래 감추고 은밀히 숨어 있음을 용납하는 것이니, 어찌 극기와 求仁(구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배우는 자들이 이 두 가지 사이를 살펴본다면 仁(인)을 구하는 공부가 더욱 가깝고 절실하여 빠뜨림이 없게 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헌문편 2장 (논어집주, 성백효)
헌문 2장 역시 원헌의 물음이다. 원헌이 극벌원욕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공자에게 이렇게 하면 인(仁)하냐고 물은 것이다. 공자는 그렇게 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을 실천하는 길인지는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이 네 가지 덕목뿐만 아니라 다른 덕목에도 열심히 하라는 충고의 말씀으로 인에 이르는 길은 쉽지 않음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지나치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남을 원망하는 것, 탐욕스러운 것, 이렇게 네 가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에 가까운 일이나 그렇게 행동하여 실천하기란 어렵다. 이를 실천한다는 것은 분명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더 나아가 내적 수양을 위한 극기에 다다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복례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공자의 핵심적인 말씀이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안연이 공자에게 인이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신 말씀이다.
[#279]논어 제14편 헌문 1장: 헌문치 자왈 방유도곡 방무도곡
헌문 1장憲問恥, 子曰 헌문치 자왈“邦有道穀, 邦無道穀, 恥也.” 방유도곡 방무도곡 치야원헌이 수치에 대해서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라에 도(道)가 행해지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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