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어 필사

[#193]논어 제10편 향당 13장: 군사식 필정석선상지

by 스머프# 2024. 4. 12.
반응형

향당 13장

君賜食, 必正席先嘗之.
군사식   필정석선상지
君賜腥, 必熟而薦之.
군사성   필숙이천지
君賜生, 必畜之.
군사생   필휵지
侍食於君, 君祭先飯.
시식어군   군제선반
疾, 君視之,
질   군시지
東首, 加朝服, 拖紳.
동수   가조복   타신
君命召, 不俟駕行矣.
군명소   불시가행의

임금이 음식을 내려 주시면 반드시 자리를 바로 하고서 먼저 맛을 보셨다.
임금이 날고기를  내려 주시면 반드시 익혀서 조상께 올리셨다.
임금이 산 짐승을 내려 주시면 반드시 그것을 기르셨다.
임금을 모시고 식사를 할 때는, 임금이 고수레를 올리시면 먼저 맛을 보셨다.
임금이 문병을 오시면, 머리를 동쪽으로 두시고 누워 조복을 몸에 덮고 그 위에 띠를 펼쳐 놓으셨다.
임금이 명을 내려 부르시면 수레 준비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서 가셨다.


- 賜(줄 사): 주다, 하사하다, (은혜를) 베풀다 
- 腥(비릴 성): 비리다, 누리다, 더럽다, 추악하다
- 薦(천거할 천/꽂을 진): 천거하다, 드리다, 올리다
- 畜(짐승 축/쌓을 축/기를 휵): 짐승, 가축, 개간한 밭, 기르다.

* 君祭先飯(군제선반)
: 임금이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 (그동안에) 먼저 먹다.

- 飯(밥 반): 먹다. 여기서는 임금을 위하여 조금씩 시식(試食)하는 것을 말한다.

* 東首, 加朝服, 拖紳(동수, 가조복, 타신):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조복을 덮고 띠를 끌 듯이 아래로 처지게 늘여놓다. 
마치 신하가 조정에 들어가 임금을 뵙는 듯이 했다는 말이다.

- 拖(끌 타)
- 紳(큰 띠 신): 큰 띠, 벼슬아치. 벼슬아치가 조복 위에 매는 기다란 띠. 
매고 남는 부분은 늘어뜨려서 끌게 되어 있었다.


- 俟(기다릴 사/성씨 기): 기다리다, 대기하다
- 駕(멍에 가): 멍에(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 탈 것, 임금이 타는 수레.

논어 제10편 향당 13장

음식은 혹 餕餘(준여, 남은 음식)일까 염려되므로 조상께 올리지 않는 것이다. 자리를 바루어 먼저 맛보심은 군주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신 것이다. 먼저 맛본다고 말했으면 나머지는 마땅히 나누어주는 것이다. ‘腥(성)’은 날고기이니, 익혀서 祖 · 考(조 · 고, 조부모와 부모)에게 올리는 것은 군주가 내려주심을 영화롭게 여긴 것이다. 기르는 것은 군주의 은혜를 사랑하여 연고가 없으면 감히 죽이지 않는 것이다.
 
《周禮(주례)》에 “왕은 매일 한 번씩 성찬을 드니, 膳夫(선부)가 祭(제, 고수레)할 물건을 올리고 여러 음식을 맛보면 왕이 그제야 먹는다.” 하였다. 그러므로 군주를 모시고 먹는 자가, 군주가 제하면 자기는 제하지 않고 먼저 밥을 먹어 마치 군주를 위하여 맛을 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니, 감히 손님의 예를 감당하지 못해서이다.
 
‘머리를 동쪽으로 두는 것’은 생기를 받으려고 해서이다. 병들어 누워 있을 적에 옷을 입고 띠를 맬 수 없으며, 또 평상복으로 군주를 뵐 수 없다. 그러므로 조복을 몸에 가하고 또 큰 띠를 그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군주의 명령에 급히 달려가서 걸어 나가면 멍에를 한 수레가 따라오는 것이다.
이 한 절은 공자께서 군주를 섬기신 예를 기록한 것이다.


[#193]논어 제10편 향당 13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공자가 노나라 대부로 있을 때 임금을 충성스럽게 모시는 예를 설명하고 있다.

임금이 신하에게 선물로 음식을 하사하는 경우가 있을 때는 임금에게 예의를 다하여 감사함을 표현하였다.  공손하게 자리를 바르게 하고 먼저  맛을 보는 예를 지켰으며 임금이 내린 소중한 날고기는 익힌 후 조상에게 올려 먼저 드시게 함으로써 임금의 은혜를 조상께 기렸다. 

임금과 식사를 할 때는 식사 전 의례로 조상에게 고수레를 한 연후에 먼저 맛을 보는 기미(氣味)를 하였는데 이는 임금에게 손님으로 접대받는 것이 아닌 신하로서의 경외심을 보인 것이다.

임금은 항상 남면(南面)을 하기에 방의 북쪽에 앉아야 했으므로(임금은 언제나 남쪽 방향(南面)으로 신하를 보는 것이 예) 문병을 하셨을 때 공자는 머리를 동쪽에 두고 누워 조복과 큰 띠를 몸 위에 올려놓는 (병으로 누워 있어 스스로 의관을 차려입기 어려운 상태이므로) 예의를 보이셨다.

또한 임금이 부를 때는 미처 수레가 준비되기도 전에 바로 나가시어 걸어가다가 중간에 준비된 수레를 타셨다. 그만큼 임금에 대한 공경과 신하로서의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