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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57]논어 제9편 자한 7장 : 오유지호재 무지야

by 스머프# 2024.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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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 7장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자왈    오유지호재    무지야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유비부문어아    공공여아
我叩其兩端而竭焉.”
아고기양단이갈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비천한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다하여 알려줄 것이다."


有鄙夫問於我(유비부문어아) : 한 촌사람이 나에게 묻다.
   - 有(유) : 어느, 어떤.
空空如也(공공여야) : 아무것도 모른다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아는 것이 없다.
   - 空空(공공) : 무식하여 머릿속이 텅 빈 모양.
   - 如(여) : 형용사 접미사.
叩其兩端(고기양단) : 그 양쪽을 캐묻다. 질문의 시작과 끝의 양쪽, 즉 질문의 시말을 하나하나 캐물어서 질문의 의도를 철저하게 파악한다는 뜻.
   - 叩(두드릴 고 / 물을 고) : 묻다.

논어 제9편 자한 7장


논어집주 해석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지만 鄙陋한 사람이 나에게 묻되 그가 아무리 무식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兩端(양쪽)을 들어서 다 말해주노라.”

공자께서 겸사로 말씀하시기를 ‘자신은 지식이 없고 다만 남에게 알려줄 때에 〈상대방이〉 비록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감히 다 말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叩(고)’는 발동함이다. ‘兩端(양단)’은 兩頭(양두, 양쪽 머리)라는 말과 같으니, 始(시)와 終(종), 本(본)과 末(말), 上(상)과 下(하), 精(정)과 粗(조)가 극진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다.
 
정자(伊川)가 말씀하였다. “ 聖人(성인)이 사람들을 가르치실 적에 굽혀 나아감이 이와 같았으나 오히려 사람들이 高遠(고원)하다고 여겨 가까이하지 않을까 염려하셨다. 성인의 道(도)는 반드시 내려서 스스로 낮추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고, 현인의 말씀은 끌어올려 스스로 높이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공자와 맹자에게서 관찰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윤 씨(尹焞(윤돈))가 말하였다. “성인의 말씀은 상하에 극진하니, 그 淺近(천근)한 데 나아가면 보통사람들도 모두 앎에 참예할 수 있고, 그 지극한 것을 다하면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더할 수 없으니, 이를 일러 兩端(양단)이라 한다. 예컨대 樊遲(번지)가 仁(인)과 智(지)를 물었을 적에 〈공자의 대답이〉 양단을 다하여 더 이상 남김이 없었던 것과 같다. 만약 上(상, 형이상)만 말하고 下(하, 형이하)를 빠뜨리며, 理(이)만 말하고 사물을 빠뜨린다면 어찌 성인의 말씀이겠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자한편 7장 (논어집주, 성백효)


[#157]논어 제9편 자한 7장 :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성인인 공자의 학문에 대한 겸손함과 교육방법을 보여준다.
자신이 비록 부족함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상대방에게 이해를 시키겠다는 말씀이다.

 공자는 유교무류(有敎無類)라고 하여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가르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배움의 문을 열어 주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최소한의 성의만 받고 제자로 들였으며 그들의 교육 수준 정도에 따라 가르침의 방법을 달리 하였다. 또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제자들이 최대한 수렴할 수 있도록 몸소 실천해 보이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조금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여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 오만한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다재다능하고 박학다식한 공자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항상 겸손하였고 모든 사람들을 존중하였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미처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진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도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선생님이라도 배움에 있어서는 항상 겸허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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