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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28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35장: 사즉불손 검즉고

by 스머프#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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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7편 술이 35장

논어 제7편 술이 35장

술이 35장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자왈    사즉불손   검즉고   
與其不孫也, 寧固.”
여기불손야   영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스럽게 하다 보면 공손함을 잃게 되고, 검소하게 하다 보면 고루하게 되지만,
공손함을 잃기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낫다.



* 奢 (사치 사) : 사치하다, 낫다, 자랑하다, 더 좋다.
* 固 (굳을 고) : 융통성 없이 고지식하다, 고루하다

* 與其(여기) ~寧(녕) ~ 
: '~ 하느니 차라리 ~ 하는 편이 더 낫다'라는 뜻의 관용어.
    -  寧(편안할 녕) : (부사) 차라리  


논어집주 해석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치하면 공순하지 못하고 검소하면 고루하니, 공순하지 못하기보다는 차라리 고루하여야 한다.”

‘孫(손)’은 공순함이요 ‘固(고)’는 고루함이다. 사치와 검소는 모두 中道(중도)를 잃었으나 사치의 해가 더 크다.

조 씨(晁說之(조설지))가 말하였다. “부득이하여 당시의 폐단을 바로잡으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술이편 35장 (논어집주, 성백효)


 

#128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35장


     사치함과 검소함. 오만함(공손하지 못함)과 고루함.

     요즘처럼 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젊은 사람들이, 또 모든 일반인들이 예쁘고 귀엽고 늘씬늘씬하고...
TV를 보나 활기찬 거리 등을 가만히 살펴보면 표정도 외모도 모두가 보기 좋다. 눈이 즐겁다. 

과연 시절의 윤택함 때문이런가. 예전처럼 우중충하지 않다. 부족한 것도 없어 보인다. 반짝거리는 활기찬 얼굴과 멋진 옷으로 치장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조차도 즐겁다. 

외면의 치장은 자신의 만족과 타인을 위한 배려이다.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의 화려함은 분위기를 바꾼다. 하지만 상식을 벗어난 경우의 치장의 화려함은 사치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내면의 성장이 과연 있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들며 속 빈 강정을 떠올리게도 된다. 기준은 그때그때 다른 기분 탓이다. 내 눈의 들보는 생각하지 못할 때 등. 혹은 나의 열등감에서 올 수도 있고.

사치스러움이 곧 공손하지 않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나 편견에서 오는 표현일 수 있다. 보통 사치라고 말할 때는 없는 주제에 허영스럽게 있는 것처럼 꾸미는 데서 오는 혐오적인 표현으로 말하니까. 사실 남이 사치스럽든 말든 나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나의 재물로 그가 꾸민 것이 아니므로. 그냥 그 사람의 취향일 수 있다. 무슨 권리로 그를 폄하하겠는가? 이렇게 살다 죽을래인 사람에게 말이다.

검소하다는 것도 마찬가지. 사치나 검소는 보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지나치게 검소하다는 것은 자린고비를 말하는 것일까. 사실 가진 것이 풍족하지 않으므로 억지로 검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많다. 자칫 검소함이 비루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궁상스러움의 긍정적인 표현이 검소함일 수도 있다. 검소함이 고루함까지 간다면 그것 역시 그 사람의 일상생활이므로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냥 그의 인생의 가치관이거나 본인이 그렇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좀 이상한 논리가 되었나?
사치스러워지면 공손하지 않고, 즉 잘난 척, 있는 척에, 남에게 함부로 하게 될 확률이 높고, 검소함이 지나치면 고루하게 될 수 있으니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중에서도 그나마 사치스러움보다는 고루함이 더 나을 것이다라는 공자의 말씀. 모든 것은 적당함이 답이다. 중용의 덕. 하지만 적당함이란 음식점에서의 "아무거나!"처럼 참으로 난감하고 어려운 주문이다.

사치스러움의 극을 달려 안하무인이 된 자에게 된통 당하는 을(乙)과 고집불통 궁상의 절정인 자린고비의 막무가내를 감내해야 하는 을(乙) 중 어떤 것이 더 나을까? ........ 궤변을 늘어놓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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