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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16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23장: 이삼자이아위은호

by 스머프#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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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7편 술이 23장

 

술이 23장
子曰 “二三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자왈    이삼자이아위은호     오무은호이     오무행이불여이삼자자    시구야

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네들은 내가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자네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네. 나는 무언가를 행하고서 자네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일이 없는 사람이니, 그것이 바로 나란 사람이네."


* 二三子 (이삼자) : 제자들을 가리키는 말.

* 以我爲隱 (이아위은) : 나를 숨기는 사람이라고 여기다.      -  隱 (숨을 은)

* 無隱乎爾 (무은호이) : 자네들에게 숨김이 없다.     - 爾 (너 이)

* 無行而不與 (무행이불여) : (무언가를 ) 행하고 알려주지 않음이 없다

* 여이삼자 (與二三子) : 너희들과 함께하다.

*丘 (구) : 공자의 이름. 자신을 가리킬 때 자기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논어집주 해석

제자들은 夫子(부자)의 道(도)가 높고 깊어서 따라갈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숨기는 것이 있는가 의심하였으니, 聖人(성인)의 作止(작지, 動靜(동정))와 語默(어묵)이 가르침 아닌 것이 없음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부자께서 이 말씀으로 깨우쳐 주신 것이다.‘與(여)’는 示(시, 보여줌)와 같다.

-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聖人(성인)의 道(도)가 하늘과 같아서 문하의 제자들이 직접 가르침을 받아서 바라 미치려고 한 뒤에야 그 높고 멂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제자들로 하여금> 진실로 따라갈 수 없다고 여기게 한다면 <제자들의> 도를 趨向(추향)하는 마음이 <자포자기하여> 태만해지는 데 가깝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의 가르침은 항상 낮추어서 나아가기를 이와 같이 하신 것이다. 이는 비단 자질이 용렬하고 낮은 자로 하여금 힘쓰고 생각하여 바라서 미치게 할 뿐만 아니라, 재기가 고매한 자도 감히 등급을 건너뛰고 쉽게 여겨 나아가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여씨(呂大臨(여대림))가 말하였다. “성인은 도를 體行(체행)함에 숨김이 없어 마치 天象(천상)과 같이 밝아서 지극한 가르침 아닌 것이 없다. 항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나 사람들이 스스로 살피지 못할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술이편 23장 (논어집주, 성백효)


#116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23장


     공자의 다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미처 제자들이 쫓아가지 못하자 제자들은 혹시나 뭔가 비법을 숨기고 제대로 전수해 주지는 않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품었다. 이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한 공자의 말씀이다. 이것만 보아도 공자가 그 시대에 얼마나 범상한 인물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가 심혈을 기울여 본인의 모든 것을 전수하였어도 제자들이 그것을 모두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안 되었다면 사람들은 늘 제 탓은 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다반사이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모두가 내 맘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심지어 재량이 부족한 자들은 또한 왜곡해서 엉뚱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똑같은 말을 같은 자리에서 듣고도 해석이 분분한 이유다.

우리가 대학에서 전공과목을 정해서 공부를 하고 학점을 훌륭하게 딴다고 해도 실제 사회에 나가서는 다시 그 회사의 틀에 맞춰 소위 인턴과정을 거친다. 또한 스펙이니 뭐니 해서 막대한 돈을 들여 과외수업을 받고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렇다면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대학교육이 왜 필요한가. 시집을 잘 가기 위한, 또 이력서 1차 면접을 위한, 간판을 따기 위해서만인지 늘상 궁금했다. 정녕 중요한 것인가?

이렇게 배우는 것과 그 이론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에서는 많은 갭이 존재한다. 독일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공부 쪽으로 나갈 사람이면 대학으로, 빨리 돈을 벌기 위해서는 기술 쪽으로 진로를 일찌감치 틀어버리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쓸데없는 시간을 너무 낭비한다. 우리나라는.

공자는 이러한 폐해를 일찌감치 깨우치시고 글과 말로 가르치는 데에 한계를 느끼셨던 것 같다. 그래서 몸소 실천을 하면서 생활 속에서 지도를 하셨다(言傳身敎) . 얼마나 영민하신 분인가. 제자들이 열등감을 가질 만도 하다. 항상 언행일치를 하는 것은 어렵다. 좋다는 것은 알지만 바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설사 행동으로 가더라도 습관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오랜 세월이 지나감에도 우리는 좋은 말씀, 훌륭한 생각과 실천의 방법을 배우고, 배우고, 배우고 또 학습하는 것이다.


 言傳身敎  (언전신교)

자신의 언행으로 남을 가르치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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