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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07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14장

by 스머프#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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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7편 술이 14장

 

술이 14장
冉有曰  “夫子爲衛君乎?” 
염유왈     부자위위군호
子貢曰  “諾. 吾將問之.”  

자공왈    낙    오장문지 
入曰  “伯夷叔齊, 何人也?"   
입왈     백이숙제    하인야 
曰  “古之賢人也.”   

왈     고지현인야     
曰  “怨乎?” 
왈     원호   

曰  “求仁而得仁, 又何怨?”  
왈     구인이득인   우하원  
出曰  “夫子不爲也.”

출왈     부자불위야

염유가 말하였다. "선생님께서 위나라 임금을 위해 일하실까요?"
자공이 말하였다. "좋아요. 제가 여쭈어 보지요."

안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엣날의 현인이지."
"세상을 원망 했을까요?"
"인(仁)을 추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했겠느냐?"
자공이 밖으로 나와서 말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위나라 임금을 위해 일하지 않으실 겁니다."


* 爲(위) = 助(조, 돕다)

* 諾(낙) : 대답하는 말


논어집주 해석

‘위나라 임금’은 出公 輒(출공 첩)이다. 靈公(영공)이 세자인 蒯聵(괴외)를 내쫓았는데, 영공이 죽자, 국인들이 괴외의 아들인 輒(첩)을 세웠다. 이때 진나라에서 괴외를 본국에 들여보내자, 輒(첩)이 그를 막았다. 이때에 공자가 위나라에 계시니, 위나라 사람들은 괴외는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고 輒(첩)은 嫡孫(적손)이므로 마땅히 서야(즉위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염유(冉有)가 의심하여 물은 것이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의 두 아들이다.
아버지(고죽군)가 장차 죽을 적에 숙제를 세우라고 遺命(유명)하였는데, 아버지가 죽자 숙제가 백이에게 양보하였다. 백이가 “아버지의 遺命(유명)이다.” 하고 마침내 도망가니, 숙제도 君位(군위)에 서지 않고 도망갔다. 이에 國人(국인)들은 둘째 아들을 세웠다.

그 뒤에 무왕이 주왕을 정벌하니 백이와 숙제가 말고삐를 잡고 간하였는데,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키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祿(녹))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주나라를 떠나 수양산에 숨어 살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怨(원)’은 悔(회, 후회)와 같다. 군자가 그 고을에 거주할 때에는 그 고을의 대부(邑宰(읍재))를 비난하지 않는데, 하물며 임금에 있어서이겠는가. 그러므로 자공이 위나라 군주를 곧바로 指斥(지척) 하지 않고 백이와 숙제를 들어 질문한 것인데 夫子(부자)의 대답이 이와 같았으니, 그렇다면 공자께서 위나라 임금을 돕지 않으실 것을 알 수 있다.

백이는 아버지의 유명을 존중하였고 숙제는 천륜을 중시하였으니, 이들이 나라를 사양한 것은 모두 천리의 바름에 합하고 인심의 편안함에 나아가기를 구한 것이요, 이윽고 각각 자신의 뜻을 얻고서는 그 나라를 버리기를 헌신짝처럼 여겼으니, 어찌 후회함이 있었겠는가.

위나라의 輒(첩)이 나라를 점거하고 아비를 막아서 행여 나라를 잃을까 두려워한 것으로 말하면 한 자리에 놓고 거론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나라를 사양하다가 도망하였고 정벌을 간하다가 굶주려 죽었으나 끝내 원망과 후회가 없었으니, 夫子(부자)께서 이것을 어질게 여기셨다. 그러므로 위나라의 첩을 돕지 않으실 줄을 안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술이편 14장 (논어집주, 성백효)


#107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14장


    술이 14장의 전후 사정은 다음과 같다. 위나라의 세자 괴외는 영공의 부인이자 어머니인 남자를 축출하려다가 들통이 나 도망을 갔다. 위령공이 사망하자 국인들이 괴외의 아들인 첩을 내세웠다. 이때 진나라에서 괴외가 돌아오려하자 아들인 첩이 무력으로 막았다. 공자가 유랑하다가 위나라에 머문 시기이다. 

괴외는 스캔들의 여왕인 어머니 남자를 해코지 하려 했으나 영공의 남자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어쨌든 이도 불효요, 괴외의 아들도 아버지가 본국으로 돌아오려는 것을 제자리를 뺏길까 하여 막은 것도 천륜에 어긋난 것이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정통성이 없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자가 위나라의 정사를 도울까 하는 의심이 생긴 염유와 자로의 궁금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나라 말기의 형제인 백이와 숙제는 서로 왕위(고죽군의 영주자리)를 고사하고 끝까지 군주를 지킨 의인으로 알려져 있다. 공자 역시 이들에 대해 여러 번 경의를 표한다. 상나라를 토벌한 주나라의 무왕에 대하여 신하가 임금을 주살하는 것은 의가 아니라고 간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강태공의 덕). 그들은  주나라의 녹봉은 받을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서 고사리를 캐 먹다가 고사리도 주나라의 것이다라는 말에 그조차 먹지 않고 굶어 죽게 된다.

이처럼 백이와 숙제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충절을 지킨 의인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그렇다면 자공은 어째서 위나라의 정사와 백이숙제 이야기를 연결시킨 것인가? 형제인 백이숙제는 서로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했으나 부자지간인 괴외와 첩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대적했다는 상황인데... 백이숙제는 인(仁)을 구했지만 괴외와 첩은 서로의 욕심을 내세웠으므로 비교조차도 안되어 당연히 공자께서 돕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을 한 것 같다.

아직 깊은 속 뜻을 이해하기엔 부족하다. 좀 더 분발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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