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與之釜.”
자화사어제 염자위기모청속 자왈 여지부
請益. 曰 “與之庾.”
청익 왈 여지유
冉子與之粟五秉.
염자여지속오병
子曰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 不繼富.”
자왈 적지적제야 승비마 의경구 오문지야 군자주급 불계부
原思爲之宰,與之粟九百,辭. 子曰 “毋!以與爾隣里鄕黨乎!”
원사위지재 여지속구백 사 자왈 무 이여이인리향당
자하가 제나라에 심부름 가게 되자, 염자가 자하의 어머니를 위하여 곡식을 보내주기를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여섯 말 넉 되를 주어라."
더 줄 것을 요청하자, "열여섯 말을 주어라"라고 하셨다.
염자가 곡식 여든 섬을 주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적이 제나라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털가죽옷을 입었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는 절박한 것은 도와주지만 부유한 자가 더 부자가 되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원사가 공자의 가재가 되자, 그에게 곡식 구백 말을 주었더니 그는 이를 사양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그러지 말거라. 그것으로 너의 이웃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라도 하여라!"
* 子華 (자화) : BC.509년 ~ 미상. 춘추시대 말기 노나라 사람으로 성은 공서(公西), 이름은 적(赤), 자는 화(華), 또는 공서화(公西華)이다. 공자 문하 72명의 수제자를 뜻하는 공문칠십이현 중 한 명이다. 그는 공자보다 42세가 어렸던 제자인데 예의가 바르고 우수한 외교적 수완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 冉子 (염자) : BC.522년 ~ BC.489년. 노나라 출신으로 자는 자유(子有)이다. 염유(冉有), 염자(冉子)로 불리기도 한다. 춘추시대 말기 공자의 제자로 주문왕의 열 번째 아들 염계재(冉季載)의 후예다. 정사(政事)에 능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이재(理財)에도 밝았다. 공자는 후에 염구가 계강자를 위해 백성들로부터 가혹한 세금을 거두어들이자 그를 비판하며 배척하기도 하였다.
* 原思 (원사) : BC 515년 ~ 미상. 성은 원, 이름은 헌(原憲)이며, 자는 자사(子思)다. 춘추 시대 말기 노(魯)나라 사람. 그는 올바른 길이 아닌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아는 인물이었던 듯하다. 공자가 나라에서 사구(司寇) 벼슬을 할 때 가읍의 가재(家宰)를 맡았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자 궁벽한 땅에 가서 숨어 살았다.
* 粟 (조 속) : '속'은 가신의 봉록을 의미한다.
* 釜 (가마솥 부) : 양을 헤아리는 단위로 여섯 말 넉 되에 해당한다.
* 庾 (곳집 유) : 양을 헤아리는 단위로 열여섯 말에 해당한다.
* 秉 (잡을 병) : 십육 곡이므로 오병은 팔십 곡이다. 일 곡은 십 두, 즉 열 말이므로 곡은 지금의 섬에 해당한다. 오 병=팔십 섬
* 辭 (말씀 사) : 말씀, 문체, 알리다, 청하다, 사양하다
* 毋 (말 무) : 말라, 없다, 아니다
* 隣 (이웃 린) : 다섯 집, 다섯 가구
* 里 (마을 리) : 마을, 2525 가구의 마을, 다섯 린
* 黨(무리 당) : 무리, 일가, 마을(500 가구의 마을), 친하게 지내다, 치우치다
* 鄕(시골 향) : 시골, 고향, 접대. 12,500 가구의 고을
비가 하루 종일 슬금슬금 내렸다. 모처럼 친구들 모임에 아침부터 서둘러 나가느라 필사가 늦게 시작됐다. 수다수다하니 피곤하지만... 그런데 옹야 3장은 내용이 기네. 알아보니 염자와 원사의 이야기를 비교하느라 주희 선생님께서 붙여 놓은 것이라 한다. 아~그렇구나.
공자님의 '군자는 절박한 것은 도와주지만 부유한 자가 더 부자가 되게 하지는 않는다'에 대한 두 제자에 대한 비유를 말함이다. 알아서 줄텐데 이재에 밝았던 염자가 오지랖을 부렸군. 공자님은 어쩜 저렇게 눈도 밝고 속도 깊으신 것일까? 이 문장들을 보고 한참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얼마나 욕심이 많은 것인가? 쓰지도, 먹지도 않는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고 사니... 군자는 모쪼록 미니멀리즘!
하긴 난 군자가 아니니까. 군자 아닌 소인은 이만 물러가옵니다. 오늘 해야할 일들을 내일로 미루며....
簞食瓢飮
단사표음
대바구니에 담긴 밥과 표주박에 담긴 물
소박한 밥상과 변변찮은 음식에서 나타나는 청빈한 삶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