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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71일 차] 논어 제6편 옹야 1

by 스머프#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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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6편 옹야 1

 

1.
子曰  "雍也, 可使南面."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 簡."
仲弓曰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雍之言, 然."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옹은 임금 노릇을 맡길 만하다."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하여 여쭙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지, 소탈한 사람이니까."
중궁이 말하였다. "항상 경건하면서도 행동할 때는 소탈한 자세로 백성들을 대한다면 또한 괜찮지 않습니까? 항상 소탈하면서 행동에 옮길 때도 소탈하다면 지나치게 소탈한 것이 아닙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구나."


* 雍(옹) : BC.522년 ~ 미상. 염옹(冉雍). 仲弓(중궁)이 자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 중 안회(안연)과 더불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자공(단목자)“만약 덕이 있는 임금을 만나 높은 지위에 오른다면 그 이름을 실추시키지 않을 것이다. 가난해도 빈객이 된 듯이 당당하고, 아래의 신하를 부릴 때 함부로 대하지 않고 그 힘을 빌리듯이 하며, 노한 마음을 제삼자에게 옮기지 않고, 남을 심하게 원망하지 않으며, 지난날의 허물을 끄집어내지 않으니, 이것이 염옹의 행실이다.”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공자가 顔淵(안연),  閔子騫(민자건), 冉伯牛(염백우)와 더불어 德行(덕행)이 가장 뛰어난 제자로 꼽은 인물.

   공자는 임종 전에 제자들 앞에서 “어질구나, 염옹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구나.”라고 칭찬했다. 공자가 죽자 염옹은 그의 도(道)가 전해지지 못할까 두려워 민자건(민손) 등과 함께 『논어』 120편을 편집했다. 또한 홀로 6편을 편찬하여 『경간집(敬簡集)』이라고 불렀는데, 진시황제 분서갱유 때 유실되었다.

* 子桑伯子(자상백자) : 주희에 따르면 노나라 사람이라 하고, 그의 생애에 관하여는 미상이다. [장자]에 나오는 자호(自桑戶)라고도 하나, 확실치 않다.


* 南面(남면) : 남쪽을 향하다. 통치자의 자리. 임금 노릇을 하는 것. 임금은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앉아서 신하들을 대하며 정사를 돌보기 때문이다.

* 簡(간) : 번거롭고 까다롭지 않다. 대범하다, 소탈하다. 簡(간)은 '간략하다, 단출하다'란 뜻으로, 본문과 집주의 풀이를 읽어 보면, 긍정의 의미와 부정의 의미가 동시에 내포된 느낌이다. 즉 적절한 簡(간)은 긍정적이지만 과도한 簡(간)은 부정적 느낌을 주는 듯 하다. 仲弓(중궁)은 冉雍(염옹)의 字(자_어른이 된 후의 이름)이다. 

* 居敬(거경) : 공경함에 거처한다,즉 언제나 몸과 마음에서 공경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居(거): 평상시, 일상생활.

* 無乃(무내).... ... 하지 않은가?      無乃大簡乎(무내태간호): 너무 대범하지 않은가.
   (무) : 不(불)과 같다.
  • 乃(내) : 바로 ~이다.

* 大(대 =太) : 太 와 통용되어 '지나치게', '너무' 등의 뜻.

* 然(연): 그러하다, 옳다.



     옹야편을 시작하며...
임금 노릇을 해도 될만한 염옹이 자상백자에 대하여 공자께 묻자 괜찮지만 대범하다고 하셨다. 자상백자라는 사람을 찾아보았으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만큼 내세울만한 제자가 아니었는지, 사실 제자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약 3,000여 명의 제자 중 그래도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그는 대범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마저도 대범하여 행동함에 있어서 경솔한 곳이 있었던 듯. 위정자는 백성을 대할 때는 까다롭게 굴지 않고 대범해야 하지만 평상시의 자신의 행동은 조심스러워야지 자신에게마저 대범해서는 안된다는 주석이 있다.

    검색하다보니 다음과 같은 논어에 대한 칼럼이 있어 읽어보고자 가져왔다. 오늘 강원도에 높은 지대에서는 눈이 70cm나 쌓였다고 해도, 내 마음에 와 닿는 논어필사 71일 차!. 

[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9)논어 | 군자의 첫 번째 조건 ‘선량한 마음’

 

[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9)논어 | 군자의 첫 번째 조건 ‘선량한 마음’

성백효의 ‘논어집주’는 송대 이후 중국과 조선에서 교과서 격이었던 주희의 ‘논어집주’ 번역서다. 남회근의 ‘논어강의 상·하’(마하연)는 주자 정통의 주석에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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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백효의 ‘논어집주’는 송대 이후 중국과 조선에서 교과서 격이었던 주희의 ‘논어집주’ 번역서다. 남회근의 ‘논어강의 상·하’(마하연)는 주자 정통의 주석에 새로운 해석을 가한다. 초보자의 경우 진순신의 ‘논어교양강의’를 먼저 읽어볼 만하다.

성현들은 출세를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보다 자기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했다. 학문이 무르익고 자기 수양이 깊어지다 보면 출셋길도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위인지학’의 차원에서 공부를 하기 마련이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한다. 살다 보면 삶이 점점 삭막해지는데 이때 고전이 그리워진다. 논어를 비롯한 인문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손에 잡히게 되는 것일 게다. 인문학을 마음속으로 부르는 나이는 언제쯤일까? 아마도 마흔쯤이 아닐까 싶다.

“40, 50이 돼도 명망을 얻지 못했다면 역시 두려워할 만한 가치가 없다.” “나이 마흔이 돼서도 여전히 미움을 받는다면 그의 인생도 끝이다.” 논어의 자한편과 양화편에 나오는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마흔이 돼도 공자가 말한 대로 ‘불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미혹’되기 일쑤다. 불안이 밀려오고 삶은 갑자기 갈피를 잃은 듯 혼란스럽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때 위기지학을 위해 가장 많이 찾게 되는 책이 ‘논어’ 일 터다.

“젊어서는 여색에 지나치게 빠지지 않고(이성), 장성해서는 다툼이 나지 않도록 경계하고(지위와 명예), 늙어서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경계(소유에 대한 욕심)해야 한다.”

공자는 군자가 경계해야 할 것으로 이 세 가지를 드는데, 계씨편의 이 구절만 읽어도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또 현재 자신의 처신을 재고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새롭게 좌표 설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500년 전 인도에서 붓다의 가르침이 제자들에 의해 ‘아함경’으로 만들어질 즈음, 중국에서는 공자(BC 551~479년)의 제자들이 모여 스승의 어록을 집대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논어는 바로 공자의 어록(語)을 모아 편집(論)한 것이라는 뜻인데 본문에 등장하는 자하, 자유, 증자, 유자 등 제자 64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논어는 위(魏)의 하안(何晏)이 저술한 ‘논어집해’(이를 ‘고주(古注)’라고 부름)에서 시작한다. 논어집해에서 학이편에서 요왈편에 이르는 20편으로 이뤄진 현존본의 원문이 결정됐다. 송대 주희가 ‘논어집주’를 저술한 후에는 이것이 이른바 ‘신주(新注)’가 돼 하안의 ‘고주’를 대체했다. 중국에서는 ‘논어집주’를 과거시험의 교과서로 삼았을 정도다. 이 책과 다른 주석을 가할 경우 자칫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박세당은 ‘논어사변록’을 지어 새로운 주석을 가하다 송시열 일파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큰 화를 당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하려면 ‘언변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뜻밖에도 논어는 언변에 대한 경계가 앞부분에 배치돼 있고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경고하는 문구들이 나온다.

학이편에 “듣기 좋게 말이나 잘하고 보기 좋게 태도나 꾸미는 자들 중에는 인(仁)한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며 교언영색을 경계한다. 제자들은 평소 스승 공자가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이를 경계하는 말을 수없이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교언영색을 일삼는 사람을 학생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재주 있는 자를 싫어하노라.” 이는 선진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는 이를 ‘오부녕자(惡夫佞者)’라고 했다. 논어를 읽으면 몇 가지 핵심적인 문구들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오부녕자도 그중 하나다. ‘녕(佞)’은 말재주가 있는 것, 아첨하는 것을 가리킨다. 나아가 “자주색이 붉은색의 빛과 자리를 빼앗는 것을 미워하며, 교묘한 말재주가 나라를 전복시키는 것을 미워한다”(양화편)고 했다. 공자는 말재주가 인간관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다른 사람을 해칠 뿐 아니라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음을 경고했다. 자주색은 붉은색에 가깝기는 하지만 붉은색은 아니다. 자주색은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가짜인 것이다.

공자는 해로움이 되는 세 벗, 즉 손자삼우(損者三友)를 말하면서 그중 하나로 말을 잘 꾸미거나 과장되게 하는 이를 꼽는다. “아첨하며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편벽(便辟)형 인간, 앞에선 치켜세우다 뒤에선 비방하는 선유(善柔)형 인간, 말을 과장되게 하는 편녕(便佞)형 인간과 사귀면 곧 해가 된다.” 공자는 교묘하게 말을 꾸미는 사람 가운데 인(仁)한 사람이 드물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름답게 말하는 사람은 덕을 혼란스럽게 하며 상대방을 즐겁게 해서 자기 이익을 채우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이인편).

그렇다면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자공이 묻자 “말보다 행동을 앞세워라. 그러면 사람들은 너를 따른다”라고 공자는 답했다. “네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먼저 실행하라. 그리고 말을 한다면 충분히 군자라 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무엇보다 말을 앞세우지 않아야 군자라는 말이다. 흔히 경영에서 ‘실행이 답이다’라고 한다. 실행보다 말을 앞세우는 경영자는 위험하다는 의미겠다.

공자는 말을 앞세우지 않는 군자의 첫 번째 조건으로 ‘선량한 마음’을 든다. 선량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사무사(思無邪)’, 즉 ‘마음의 사악함을 없애 주는 것’(위정편)을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의 사악함을 없애기 위한 공자의 처방이 좀 색다르다. 사무사의 방법은 바로 ‘시를 읽는 일’이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온유돈후하고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묘약이라고 공자는 말한다. “시 삼백 편을 정리한 주요 목적은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의 생각에 사악함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공자는 그동안 전승돼 내려오던 시들을 모은 후 여기서 고르고 골라 300편의 시를 선정했는데 이게 바로 ‘시경’이다.

공자는 제자들과 대화를 하다 자신의 뜻을 이해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공자가 제자에게 한 최고의 칭찬은 다름 아닌 “비로소 너와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라는 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공자는 때로 제자들이 야속한 마음이 들 정도로 냉정한 말을 해 분발하도록 이끌었다. 한 번은 자공이 “전 남이 나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을 저 역시 남에게 하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자 “네가 그 정도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라고 싸늘하게 일침을 가했다. 염구가 세금을 수탈해 부를 축적하자 공자는 “염구는 우리 사람이 아니다. 너희들이 북을 크게 울려 그를 성토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했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았다.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꼭 그래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고, 자기의 선입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게 자한편에 나오는 ‘4무’(毋意, 毋必, 毋固, 毋我)다. 말하자면 공자가 지닌 이 같은 덕성만 갖춘다면 능히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더불어 공자는 도덕적인 군자로 살아가기가 매우 힘듦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했다. “나는 미모를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도덕을 좋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흔히 ‘그 사람의 인물 평가는 관 뚜껑을 덮은 후’라고 한다. 논어가 제시한 그 기준은 바로 ‘인(仁)’이다.

“사라져 가는 시간이 마치 강물과 같구나.”

공자의 이 말은 나이가 들수록 가장 가슴 시리도록 와닿는 말일 게다. 이 시린 가을, 논어를 마음으로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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