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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69일 차] 논어 제5편 공야장 25

by 스머프# 2023.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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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공야장 25

25.

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안연 계로시    자왈     합각언이지      자로왈    원거마의경구   여붕우공   폐지이무감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안연왈     원무벌선    무시로     자로왈    원문자지지     자왈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안연과 계로가 공자를 모시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각자 자신의 뜻을 말해 보지 않겠느냐?"
  자로가 말하였다. "수레와 말과 좋은 털가죽옷을 벗들과 함께 나눠 쓰다가 그것들이 못쓰게 되더라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합니다."
  안연이 말하였다. "잘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고 공로를 과시함이 없도록 하고자 합니다."
  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노인들은 편안하게 해 주고, 벗들은 신의를 갖도록 해주고, 젊은이들은 감싸 보살펴 주고자 한다."

 

** 顔淵(안연) : 기원전 514년 ~ 기원전 483년. 자는 자연(子淵). 자(字)를 따서 안회( (顔回), 안자연(顔子淵)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 학덕이 높고 재질이 뛰어난 공자의 가장 촉망받는 제자였다.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받들어져서 안자(顔子)라고 높여 부르기도 하고 후세에는 아성(亞聖)이라고 불렸다.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로서, 관련 에피소드가 제일 많다. 달리 말하자면 공자 제자 3천 명 중 넘버 원. 공자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하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공자와 친척관계라는 설도 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는 학자·정치가·웅변가로서 뛰어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안회는 덕의 실천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 논어 선진편에 의하면 안연이 죽자, 안연의 부친인 안로는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안연의 곽(관을 둘러싸는 바깥덧널. 당시 예법상 평민은 곽을 쓸 수 없다)을 만들자고 청했다. 공자는 '재주가 있거나 없거나 역시 각각 다 같은 아들이다. 내 아들 이가 죽었을 때 관만 있고 곽은 없었으니 내가 걸어다니기로 하고 곽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으나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대부의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걸어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였다. 즉 그렇게 좋아한 제자 안회가 죽고 난 다음에, 안회의 아버지가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안회의 덧널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하자 공자가 거절하는 대목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 엄청 쪼잔하다는 평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은 안회의 신분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안회는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민의 예로 장례를 지내야 했고, 덧널을 쓰면 안 되었던 것이다.

  • 역시 논어 선진편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안회가 죽은 다음에 공자의 제자들이 안회의 장례를 크게 치러주고 싶어 했지만 공자가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결국 안회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어주었는데, 공자는 이것이 예절에 어긋나며 자기 책임이 아니라 니들 책임이라고 꾸짖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후에는 공자가 얼마나 안회를 좋아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공자가 안회를 좋아한 것은 좋아한 것이고, 안회가 평민인 것은 평민인 것이다라는 것이다.

    안연은 가난하게 살면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굶는 일이 허다해지다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일설에는 29세에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버렸고, 결국 32세 요절하고 말았다고 하나, 32세에 죽었다는 것은 후세의 착각으로 보인다. 공자의 천하 주유에 동행한 점이나 자로, 자공 같은 사람들과의 교우 문제를 봐도 그렇게 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40대 중후반에 죽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사망 시기가 40대 중후반이라고 해도 요절이라고 평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무위키]


** 季路(계로) : 자로(子路),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字)는 자로(子路)이며, 계로(季路)라고도 불린다.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의 정치가이자 무인.  '공문십철(孔門十哲)' 가운데 하나. 공자의 여행 동안 고난을 함께 하였다. 주로 공자의 호위를 자처하며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공자를 여러 번 지켜내기도 했다. 자공, 안연과 함께 공자의 제자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인물로, 자공이 지(智), 안연이 인(仁)으로 유명하듯 자로는 보통 용(勇)에서 으뜸가는 인물로 꼽힌다. 

     본래 야인(野人) 출신이었으며,도 셌다. 그 이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공자의 말에 의하면 자로가 제자가 된 후에는 공자를 험담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어느 날, 공자가 강론하고 있는 현장에 뛰어들어 공자에게 행패를 부리려다가 공자에게 감화되어 제자가 되었다. 

    자로는 제자라기보다 친구가 아니었나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으나, 엄연히 자로가 공자를 경어로 부르는 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공자의 친구 설이 맞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단, 공자의 제자 중에 직접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이 서술되어 있는 것은 자로뿐이므로 자로와 공자 간의 거리가 다른 제자들보다도 친밀하고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다. 나이 차이도 9살밖에 되지 않으므로, 공자도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자로를 더더욱 편하게(살가울 땐 살갑지만 따끔할 땐 아주 따끔하게) 대했던 듯하다.

     자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되며 논어의 안연편에는 자로는 약속을 다음 날까지 미루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맹자에 의하면 자로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결점을 지적하면 기뻐하였고 일단 배우면 깨우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자로는 용맹스러웠고 직선적이고 성급한 성격 때문에 예의 바르고 학자적인 취향을 가진 제자들과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성격은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공자의 사랑을 받았다. [나무위키]


**   덮을 합 

**   갖옷 구, 갖바치(가죽으로 신발을 만드는 사람을 일컬음) 

**   해질 폐         ● 敝袍破笠(폐포파립) : 해진 옷과 부러진 갓, 너절하고 구차한 차림새.

**    칠 벌

**     품을 회, 품다, 임신하다, 생각하다    懷抱(회포) : 마음속에 품은 생각, 잊히지 않는 생각


 

# 69일 차 공야장(公冶長) 25

     

     늘 용감했던 자로는 공자의 물음에 즉각적으로 친구의 우정과 의리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질적인 것에서 초월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을 우선했다는 점에서 역시 공자의 제자들 중 가장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항상 침착하고 학덕이 높은 안연은 가난하게 살았음에도 물질적 집착은 보이질 않는다. 겸손한대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과시를 하지 않는 것이 참된 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화답하는 공자는 노인들을 편안하게, 벗들과의 신의, 젊은이들의 과오를 감싸주는 것이 곧 덕이고 인이자 행복이라고 피력하셨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또 상식에 속하는 범주들을 덕과 인으로 다스림이 곧 최종적으로 추구할 목표라는 뜻인가 보다.


 三人行 必有我師 
삼인행 필유아사

세 사람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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