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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66일 차] 논어 제5편 공야장 19 20 21

by 스머프# 2023.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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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공야장 19 20 21

 

19.   
季文子 三思而後行          계문자 삼사이후행 

子聞之曰 "再斯可矣."       자문왈 재사가의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한 뒤에야 행동을 하였다.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두 번이면 된다."


** 계문자(季文子) : 춘추 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의 대부(大夫). 신중하면서도 검소한 재상으로 이름이 있었음. 문공(文公)과 양공(襄公) 때 대부(大夫)를 지냈다. 계행보(季行父)로도 불린다. 文子는 죽은 뒤에 조정에서 내린 諡號(시호)이다. 문공과 선공(宣公), 성공(成公), 양공 4대를 섬기면서 깊은 신뢰를 쌓은 현인이다. 

   

20.
子曰 "甯武子, 邦有道則知, 邦無道則愚, 其知可及也, 其愚不可及也."

자왈  영무자  방유도즉지  방무도즉우  기지가급야  기우불가급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행해질 때는 지혜롭게 행동했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는 어리석은 듯이 행동했다.
그 지혜는 누구나 따를 수 있으나 그 어리석음은 아무나 따를 수가 없다."


** 영무자( 甯武子) :
영자(寧子). 영생(寧生). 영무(寧武). 영유(寧兪). 춘추 시대 위(衛)나라 사람. 위문공(衛文公)과 성공(成公) 때 대부(大夫)를 지냈다. 이름은 유(兪)고, 무자는 시호(諡號)다. 성공이 무도하여진(晉) 나라가 공격해 오자 나라를 잃고 초(楚) 나라와 진(陳) 나라로 달아났다가 결국 진후(晉侯)에게 사로잡혔다. 그가 어려움을 무릅쓰고 여러 가지로 주선하여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   차라리 , 어찌, 편안하다

 

​21.
子在陳, 曰 "歸與, 歸與!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자재진 왈   귀여, 귀여!  오당지소자광간 비연성장  부지소이재지

공자께서 진나라에 계실 때 말씀하셨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내 고향의 젊은이들은 뜻은 크지만 일에는 미숙하고,
훌륭하게 기본은 갖추었지만 그것을 재량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 狂簡(광간) : '광'은 뜻이 큰 것을 가리키고, '간'은 일에 거칠고 미숙한 것을 가리킨다. 즉, 뜻은 크지만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데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쉽사리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젊은이들이기에 공자는 다시 이들에게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 斐然(비연) : 무늬, 모습이 아름다운 모양,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본적인 학문과 성품을 갖추었다는 말.

** 所以裁之(소이재지) : 일을 차근차근 따져 보고 계획하는 방법.

*    편지 간        書簡(서간)
*    문채날 , 화려하다
*    마를 , 마르다, 짓다. 교육하다        ● 裁斷(재단), 裁縫(재봉), 裁判(재판), 裁量(재량)


# 66일 차 공야장(公冶長) 19 20 21

 

     계문자는 너무 사려가 깊어서 여러 번 생각한 후에야 행동으로 이어졌나 보다. 생각이 많다 보면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지나칠 수가 있다. 나 역시도 이 생각, 저 공상을 하다 보면 결국 일은 해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훌쩍 지나간 일이 허다하다(심사숙고형??). 고민할 시간에 되든 안되든 하면 될 것을 말이다. 해보지도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공자님은 이런  우유부단(優柔不斷)함을 경계하셨는가 보다. 즉, '계문자가 높은 벼슬로 있으면서 사사로이 재물을 쌓지는 않았으나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므로 정치를 잘했다고는 볼 수 없다'라는 날카로운 말씀이다.  

     영무자의 경우는 평안할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어지러울 때는 어리석게 행동한다는 것을 칭찬으로 말씀하신 듯하다. 중국의 역사는 하도 광대하고 복잡해서 읽어도 읽어도 모르겠다. 특히 춘추삼국시대는 영웅도 차고 넘치니... 삼국지를 읽어보면 정신이 없다. 출연하는 인물이 얼마나 많은가?
때에 맞춰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도 능력이기 때문에 우매하게 행동하는 것조차도 훌륭한 처신으로 보셨다. 하긴 눈치 없는 곰보다는 빠르게 돌아가는 여우가 나은 법.

     "나 다시 돌아갈래!"의 원조가 공자님이시라니 놀라운 발견이다. 55세 공자가 자신의 사상을 받아줄 인물을 만나기 위해 14년간의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그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에 비록 실망하였으나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뜻은 크지만 일을 처리함에 있어 미숙한, 그러나 크나 큰 이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그들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신 것이다. 그래서 다 잊어버리고 나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를 외치셨다. 지금의 공자님이 되기까지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내용 중에 하나가 아닐까.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천하유도 구불여역야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가 나서 바꾸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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