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子張問曰 "令尹子文, 三仕爲令尹, 無喜色, 三已之, 無慍色, 舊令尹之政, 必以告新令尹, 何如?"
子曰 "忠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자장이 여쭈었다.
"영윤인 자문은 세 번이나 벼슬에 나아가 영윤이 되었으나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세 번이나 벼슬을 그만두게 되어서도 성내는 기색이 없어 전에 영윤이 하던 일을 반드시 새로운 영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충성스럽구나."
"인합니까?"
"모르긴 해도 어찌 인하다 하겠느냐?"
** 자장(子張) : BC 503~? , 성은 전손(顫孫)이고 이름은 사(師), 전손사(顓孫師), 字가 子張. 진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8세 연하인 제자. 자장은 내면적 수양보다는 외면적인 일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깊이 사색하는 것을 즐겨 공자와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충신(忠信), 이 두 글자를 허리띠에 적어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는 공자와 함께 주유열국을 하다 진(陳), 채(蔡)에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비교적 개성이 강하여 자로와 비슷했다. <논어>에 나오는 횟수가 비교적 많다(18번). 공문칠십이현 중 한 사람이다. 공자가 죽은 뒤 공문(孔門)은 8개 유파로 갈렸는데, 전손 사는 독립적으로 제자를 받아들여 유가학설을 선양하여 자장의 유가를 창시했다.
** 자문(子文) : 초나라의 대부, 성은 투(鬪), 곡(穀) 또는 곡오도(穀於菟), 자는 어토(於菟) 또는 자문. 세 차례나 영윤(令尹)을 지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를 영윤자문(令尹子文)이라 불렀다. 일찍이 그의부친 투백비(鬪伯比)가 토곡오도(鬪穀於菟)가 태어나자 그를 들판에 버렸는데, 이때 호랑이가 와서 그에게 젖을 먹여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초(楚) 나라에서는 젖[乳]을 곡식이라 부르고, 호랑이를 오도(於菟, 어토)라 부르는데, 이와 같은 연유로 그에게 이런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다.
* 令尹(영윤) : 관직 이름. 초나라 上卿(상경, 국무총리)으로 나라의 정무를 보는 자리.
* 慍 성낼 온
"崔子弑齊君, 陳文子有馬十乘, 棄而違之, 至於他邦, 則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之一邦, 則又曰 '猶吾大夫崔子也.' 違之. 何如?"
子曰 "淸矣."
曰 "仁矣乎?"
曰 "未知, 焉得仁?"
"최자가 제나라 임금을 시해하자, 말 사십 필을 소유하고 있던 진문자는 이것을 버리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는 다른 나라에 이르러 " 이 사람도 우리 나라 대부 최자와 같다'라고 하고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또 말하기를 '이 사람도 우리나라 대부 최자와 같다'라고 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청렴하구나."
"인합니까?"
"모르긴 해도 어찌 인하다 하겠느냐?"
** 최자(崔子) : 성은 최(崔), 이름은 저(杼). 제나라의 대부.
** 최자와 진문자는 모두 제나라의 대부로 齊나라 장공(莊公)을 최자가 시해하자 진문자는 송나라로 망명함. 진문자는 이름이 陳須無. 제장공은 최자의 아내와 사통 하다가 BC 548년 최자에게 살해당했으며 그 후 최자는 경봉에게 살해당함. 공자 태어난 직후의 일임.
* 十乘(십승) : 말 40마리
* 弑 윗사람 죽일 시 ● 弑害(시해)
* 違 어긋날 위 ● 違和感(위화감), 違反(위반), 違背(위배)
* 猶 오히려 유 ● 猶豫(유예) 망설여 결행하지 않음, 집행유예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기쁨을 표하지 않았고 다시 그 자리를 내려왔음에도 성내지 않았다 함은 기쁨과 분노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음을 뜻한다. 나 자신의 영위보다는 국가를 생각하는 충성심이 강했다는 것으로 공자는 표현했다. 그러나 충성심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인한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영윤 자문은 벼슬을 물러날 때 새로운 영윤에게 반드시 정사를 알려주는, 이른바 유종의 미를 확실히 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최자가 제나라의 장공(莊公, 이름은 光)을 시해한 이유는 자신의 처와 사통 했기 때문이었다. 장공의 이복동생인 경공을 세워 전권을 휘두르게 되나 결국 경봉(慶封)에 의해 멸문을 당한다.
진문자는 이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났으니 임금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함인지, 단지 본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當理而無私心).
따라서, 공자는 그가 청렴하다는 건 특별히 인정했지만, 그가 仁한 사람인지는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當理而無私心
당리이무사심
이치에 합당하게 하고 사심이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