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편 8장
逸民, 伯夷·叔齊·虞仲·夷逸·朱張·柳下惠·少連.
일민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주장 유하혜 소련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齊與.
자왈 불강기지 불욕기신 백이 숙제여
謂柳下惠·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위류하혜 소련 강지욕신의 언중륜 행중려 기사이이의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위우중 이일 은거방언 신중청 폐중권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아즉이어시 무가무불가
세상을 피해 숨어산 인재로는 백이·숙제·우중·이일·주장·류하혜·소련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사람은 백이와 숙제로다.
유하혜와 소련에 대해 말하자면,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도리에 들어맞고 행동이 사리분별에 들어맞았으니, 그들은 그렇게 했을 뿐이다.
우중과 이일에 대해 말하자면, 숨어 살면서 말을 마음대로 하였으나, 처신함이 깨끗했고 세상을 버린 것이 시의적절했다.
나는 이와 달라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다."
* 逸民(일민): 세속을 초월한 사람. 세상을 피하여 숨어 사는 현명한 사람.
- 逸(달아날 일): 달아나다, 도망치다. 달리다, 질주하다. 잃다, 망실하다.
* 虞仲(우중): 태백(泰伯)의 동생인 중옹(仲雍)으로 그의 자손이 오왕(吳王)에 봉해졌기 때문에 虞(우)(吳(오)와 통용)仲(중)이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태백과 함께 동생에게 왕의를 양보하고 오랑캐의 땅에 가서 숨어 살았다.
- 虞(염려할 우): 염려하다. 근심하다. 생각하다.
* 夷逸·朱張(이일·주장): 누구인지 전해지지 않는다. 행적 미상.
* 降其志(강기지): 자신의 뜻을 낮추다. 자신의 의지를 굽히다.
* 柳下惠(류하혜): 법관인 사사(士師)라는 관직을 지낸 적이 있다. (「미자편 2」 참조.)
* 少連(소련): 동이(東夷)의 자손으로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거상(居喪)을 잘했다고 하여 공자가 칭송한 바 있다. (『禮記(예기)·雜記(잡기) 下(하)』 참조.)
* 謂(위): (다른 사람들이) 평하여 말하다.
* 降志(강지): 뜻을 낮추다, 뜻을 굽히다.
* 言中倫, 行中慮(언중륜, 행중려): 말이 윤리에 맞고 행동이 (다른 사람의) 생각에 부합하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관점에 부합하는 언행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했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 其斯而已矣(기사이이의): 아마 이러했을 뿐일 것이다.
- 其(기): 아마. 추측을 표시하는 부사.
- 斯(사): '言中倫(언중륜), 行中慮(행중려)'를 가리키는 지시대사.
- 而已矣(이이의): '~일 뿐이다'라는 뜻의 어기조사.
* 放言(방언): 말을 마음대로 하다.
* 身中淸(신중청): 처신함이 깨끗함에 들어맞다, 즉 깨끗하게 처신하다.
* 廢中權(폐중권): 세상을 버린 것이 권도에 들어맞다, 즉 세상을 버린 것이 시의적절하다.
* 我則異於是(아즉이어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들과 다르다.
- 則(즉): ~로 말하자면, ~로 말할 것 같으면, ~는. 두 가지 또는 여러 가지 사실의 대비관계를 표시하는 접속사.
- 是(시): 앞에서 이야기한 은자들을 가리키는 지시대사.
* 無可無不可(무가무불가): 반드시 글야만 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없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없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고집하는 것도 없다. 이 말은 "可以仕則仕(가이사즉사), 可以止則止(가이지즉지); 可以久則久(가이구즉구), 可以速則速(가이속즉속), 孔子也(공자야)"(벼슬에 나아갈 만하면 벼슬에 나아가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오래 머물 만하면 오래 머물고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난 사람은 공자이다[『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 上(상)』])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는 공자의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 논어집주 해석
逸民은 伯夷와 叔齊와 虞仲과 夷逸과 朱張과 柳下惠와 少連이었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그 뜻을 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분은 伯夷와 叔齊일 것이다.”
柳下惠와 少連을 평하시기를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말이 의리(조리)에 맞으며 행실이 〈올바른〉 思慮에 맞았으니, 이뿐이다.” 하셨다.
虞仲과 夷逸을 평하시기를 “숨어 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으나 몸은 깨끗함에 맞았고 폐함(벼슬하지 않음)은 權道에 맞았다. 나는 이와 달라서 可함도 없고 不可함도 없다.”
‘逸(일)’은 遺逸(유일, 벼슬길에서 빠져 있음)이요, ‘民(민)’은 지위가 없는 이의 칭호이다. 虞仲(우중)은 바로 仲雍(중옹)이니, 태백과 함께 荊蠻(형만)으로 도망한 자이다. 夷逸(이일)과 朱張(주장)은 경전에 보이지 않는다. 소련은 東夷(동이) 사람이다.
유하혜의 일은 위에 보인다. ‘倫(윤)’은 의리의 차례이다. ‘慮(여)’는 사려이니, 사려에 맞는다는 것은 意義(의의, 의취와 의리)가 있어 인심에 부합함을 말한다. 소련의 일은 상고할 수 없다. 그러나 《禮記(예기)》〈雜記(잡기)〉에 “그가 居喪(거상)을 잘하여 3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3월을 懈怠(해태)하지 않으며, 1년을 슬퍼하고, 3년을 근심했다.” 하였으니, 행실이 사려에 맞았음을 또한 볼 수 있다.
중옹이 吳(오)지방에 살 때에 머리를 깎고 문신을 하고 벌거벗는 것으로 꾸밈을 삼았다. 은거하여 자기 혼자만 선하게 한 것은 도의 깨끗함에 합하였고, 함부로 말하여 스스로 버려진 것은 도의 權道(권도)에 합하였다.
맹자가 말씀하기를 “공자는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시고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시고 오래 머물 만하면 오래 머무시고 속히 떠날 만하면 속히 떠나셨다.” 하였으니, 이른바 ‘可(가)함도 없고 不可(불가)함도 없다.’는 것이다.
사 씨(謝良佐(사양좌))가 말하였다. “일곱 사람이 은둔하여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은 것은 똑같으나 그들의 입심과 造行(조행, 나아간 행실)은 달랐다. 백이와 숙제는 천자가 신하로 삼지 못하고 제후가 벗으로 삼지 못했으니, 이미 세상에 은둔하여 무리를 떠난 것이다. 성인(공자)에서 한 등급 내려오면 이들이 가장 높을 것이다. 유하혜와 소련은 비록 뜻을 굽혔으나 몸을 굽히지 않았고, 비록 몸을 욕되게 하였으나 세상에 영합하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그 마음에 〈불결한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말이 조리에 맞고 행동이 사려에 맞은 것이다. 우중과 이일은 숨어 살면서 말을 함부로 하였으니, 말이 선왕의 법에 합하지 않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깨끗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고 저울질〔權道(권도)〕하여 의에 맞게 하였으니, 方外(방외)의 선비가 의를 해치고 가르침을 손상시켜 큰 인륜을 어지럽힌 것과는 科(과, 등급)가 다르다. 이 때문에 똑같이 逸民(일민)이라고 하신 것이다.”
윤 씨(尹焞(윤돈))가 말하였다. “일곱 사람은 각각 한 가지 일을 지켰고, 공자는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으셨으니, 이 때문에 항상 가함에 적당하여 일민의 무리와 달랐던 것이다. 揚雄(양웅)이 말하기를 ‘성인을 관찰하면 현인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이 때문에 맹자께서 백이와 유하혜를 말씀할 적에 반드시 공자로써 단정하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자편 8장 (논어집주, 성백효)
공자가 유명한 일민(逸民, 학문과 덕행이 높은 선비이지만 벼슬을 하지 않고 세상을 벗어나 초야에 사는 현자) 7명의 태도를 거론하고 그들을 평가한 글이다. 이들에 반하여 공자 본인에 대해서는 도의의 실현을 위해서 벼슬을 할 좋은 상황이면 벼슬을 하고 적절하지 못할 때는 물러나는 것이지 고지식하게 은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태도를 밝히고 있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말기 고죽국(은나라의 제후국)의 왕자로서 부친의 뜻이 셋째 아들에게 있었으므로 임금의 자리를 고사하고 다른 나라로 떠났다. 이때 은나라 속국이던 주나라(무왕)가 은나라의 왕을 폐하고 혁명을 일으키자 정당성을 부인하고 주나라의 봉직을 받기를 거부하였다. 이들은 수양산에서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었다. 끝까지 군주에 대한 충성을 지킨 의인으로 성인 반열에 있는 인물들이다. 공자는 그들의 뜻이 항상 높았고 신념을 지켰으며 몸을 깨끗하게 지닌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유하혜와 소련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였지만 윤리적으로 조리에 맞는 말과 사리분별에 맞는 행실을 하였다. 우중과 이일은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말은 했지만 몸가짐이 바르고 청렴하며 세상에서 버려져 벼슬하지 않음도 적절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공자는 은자들의 태도나 행동을 인정하지만 공자는 그들과 달리 한 국면만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한 것도 없고 불가한 것도 없다고 한 것은 기회가 와서 벼슬을 하게 되면 하는 것이고 그만둘 일이면 쿨하게 털어버리고 떠나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공자는 일이나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항상 최선의 적정한 삶을 살았다.
공자의 자절사(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가 떠오른다. 무슨 일이든지 내 주관대로 결정하지 않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으며, 내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내 상황만 생각하는 아집을 부리지 않는다. 융통성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