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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385]논어 제17편 양화 5장: 공산불요이비반 소 자욕왕

by 스머프# 2024.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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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편 6장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 
공산불요이비반    소   자욕왕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자로불열왈    말지야이   하필공산씨지지야
子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자왈    부소아자   이기도재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여유용아자    오기위동주호

공산불요가 비 땅을 근거지로 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자, 공자께서 가려하셨다.
자로가 기분 나빠하며 말하였다. "가실 데가 없으시면 그만이지, 하필이면 공산씨에게로 가시려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부르는 사람이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곳을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 것이로다!"


* 公山弗擾以費畔(공산불요이비반): 공산불요가 비읍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키다.
- 公山弗擾(공산불요, 공산불뉴: 公山弗狃) ): 계씨의 가신으로 당시 비읍(費邑)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계씨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부르매 공자가 이에 응하려고 하자 자로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공자는 결국 가지 않았다. (『史記(사기)·孔子世家(공자세가)』 참조.)
- 擾(시끄러울 요/길들일 요): 시끄럽다. 어지럽히다. 침략하다.
- 以(이): 의지하다, 근거하다.
- 畔(밭두둑 반/배반할 반): 반란하다. 叛(반)과 같다.
- 召(부를 소, 대추 조): 부르다, 초청하다, 초빙하다.

* 末之也(말지야): 갈 곳이 없으면.
- 末(말): ~할 길이 없다, ~할 곳이 없다. 무칭 지시대사(無稱指示代詞).
-  也(야): 음절을 조정하고 어기를 고르는 어기조사.

* 何必公山氏之之也(하필공산씨지지야): 어째서 꼭 공산씨에게 가는가.
- 之之(지지): 앞의 것은 강조 효과를 위하여 목적어를 동사 앞에 놓을 경우 목적어와 동사 사이에 쓰는 구조조사이고, 뒤의 것은 '가다'라는 뜻의 동사이다.
- 也(야): 의문의 어기를 표시하는 어기조사.

* 夫召我者, 而豈徒哉(부소아자, 이기도재): 나를 부르는 사람이라면 어찌 공연스럽겠는가.
- 夫(부): 문장의 첫머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는 어기조사 즉 발어사(發語詞). 대개 다음에 오는 말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다는 어감을 준다.
- 召我者(소아자): '나를 부르는 사람이다'라는 뜻의 판단문으로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 而(이): ~하면 곧. 조건에 따른 결과를 표시하는 접속사. 則(즉)과 같다.
- 豈徒哉(기도재): 어찌 공연히 부르겠느냐. 즉 반드시 나를 등용하리라는 것이다.
- 徒(무리 도): 무리, 동류, 제자, 문하생. 여기서는 '공연히'의 뜻.

* 吾其爲東周乎(오기위동주호): 내가 (그 나라를)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겠다. 동쪽에 위치한 비읍을 주나라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문왕과 무왕의 도가 잘 실현되는 훌륭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 其(기): '장차 (~하려고 하다)'라는 뜻의 부사.
- 爲(위): 만들다.
- 乎(호): 단정적인 어기를 표시하는 어기조사.

논어 제17편 양화 5장

# 논어집주 해석 

公山弗擾가 費邑을 가지고 반란을 일으키고서 孔子를 부르니, 孔子께서 가려고 하셨다. 子路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가실 곳이 없는데, 하필 公山氏에게 가시려 하십니까.” 하였다.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저가 나를 부르는 것은 어찌 하릴없이(공연히) 그러겠느냐. 나를 써주는 자가 있으면 나는 東周(동쪽 周나라)를 만들 것이다.”

弗擾(불요)는 계씨의 가신이니, 陽虎(양호)와 함께 桓子(환자)를 잡아 가두고 費邑(비읍)을 점거하고서 반란을 일으켰다.

‘末(말)’은 없음이다. ‘도가 이미 행해지지 아니하여 갈 곳이 없으니, 하필 공산씨에게 가시려 하십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어찌 하릴없이 그러겠느냐.’는 것은 반드시 자신을 등용할 것임을 말씀한 것이다. ‘東周(동주)를 만든다.’는 것은 주나라 道(도)를 동쪽 노나라에 일으킬 것임을 말씀한 것이다.

정자가 말씀하였다. “성인께서는 천하에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없고 또한 허물을 고칠 수 없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셨다. 이 때문에 찾아가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끝내 찾아가지 않으신 것은 그가 반드시 고치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화편 5장 (논어집주, 성백효)

[#385]논어 제17편 양화 5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노나라 정공 8년(BC 502년)에 계씨의 가신인 불요와 양호가 함께 불만을 품고 주군인 계환자를 가둔 후 비읍을 점거하고 삼환가문에 대항하였다. 이때 불요가 공자를 비밀리에 초빙하자 공자는 합류하여 자신의 도를 펼치려 하였다. 제자인 자로가 못마땅해하자 공자는 자신을 써 주기만 하면 주나라의 도(道)를 동쪽 노나라에 일으키겠다는 정치적 욕망을 보였다. 하지만 공자는 결국 찾아가지 않았다.  

이 때는 공자가 50세 되던 해로 평생 품었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이란 말을 남겼다. 공산불요(공산불뉴)가 상황이 좋지 않아 공자를 필요로 하니 큰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였다(왜 군주도 아니고 반란을 일으킨 가신이 부르는데 가려고 했던 것인지  공자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던 것 같다). 어쨌든 양호 일파는 이미 열세였기 때문에 삼환 가문과 불요(양호와 함께) 사이에서 공자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양호(양화)가 공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물까지 보냈었는데 공자는 거절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였었다(양화편 1장, 공자는 양호와 이복형제라고도 전한다). 그런데 불요가 부른다고 가기를 원하다니... ? 이 대목은 자로가 화를 낼 만큼 이해가 가지 않는 공자의 태도이다. 

한편 삼환 역시도 공자가 양호와 합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공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삼환씨들은 공자를 도성인 곡부의 관리직(중도재, 中都宰)에 파격적으로 임명하였다. 중도재는 사(士)보다 한 단계 높은 대부의 신분이지만 급이 높은 대부가 아닌 하대부에 불과했다. 

공자는 중도재를 1년여 지냈고 소사공(小司空), 대사공(大司空)을 거쳐 대사구(大司寇 , 현재의 법무부장관)로 승진하면서 노나라의 정치와 법을 주관하는 일을 하였다(그러나 그의 벼슬살이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공자는 하급귀족이었기 때문에 봉읍(세습 가능)은 받지 못하고 녹봉만 받았다고 한다. 이 당시 공자의 자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계씨 가문에서 여러 벼슬을 맡기도 하였다. 공자는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계손사(계환자)를 타도하려다가 실패하고 제자들과 함께 55세의 나이에 주유천하를 하게 된다. 

공자가 계씨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킨 공산에게 가려했던 이유를 정자(정이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성인께서는 천하에 훌륭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없고 또한 허물을 고칠 수 없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하셨다. 이 때문에 찾아가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끝내 찾아가지 않으신 것은 그가 반드시 고치지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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