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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284]논어 제14편 헌문 6장: 남궁괄문어공자왈 예선사

by 스머프# 2024.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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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문 6장

南宮适問於孔子曰 
남궁괄문어공자왈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
예선사   오탕주   구부득기사
然禹稷躬稼, 而有天下."
연우직궁가   이유천하
夫子不答.
부자부답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 若人!
남궁괄출   자왈    군자재   약인
尙德哉, 若人!”
상덕재   약인

남궁괄이 공자에게 여쭈었다.
"예는 활을 잘 쏘았고 오는 배를 끌고 다닐 만큼 힘이 셌지만,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임금과 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차지하였습니다."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으셨다.
남궁괄이 밖으로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로구나, 그 사람은! 덕을 숭상하는구나, 그 사람은!"


* 南宮 适(남궁 괄):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제자. 자는 자용(子容). 또 다른 이름은 남궁경숙(南宮敬叔)인데, 오늘날에 통용되는 실제 이름이다. 맹손씨 가문 사람, 즉 노나라 맹손씨 가문 맹희자(孟僖子) 아들로, 맹의자(孟懿子)의 형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남용(南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궁괄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남용의 본명은 남궁도(南宮韜)로, 자가 자용(子容)이었으므로, 남용(南容)으로 불렸다.)
- 适(빠를 괄/맞을 적)

* 羿(사람이름 예): 하나라 말기 유궁국(有窮國)의 임금으로 활을 아주 잘 쏜 사람. 전설에 의하면 당시 해가 10 개 있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예가 그 가운데 9 개를 활로 쏘아서 떨어뜨려버렸다고 한다. 그는 한때 하나라의 왕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정치는 돌보지 않고 사냥만 즐긴 나머지 머지않아 자신의 재상인 한착(寒浞)에게 나라와 아내를 함께 빼앗기고 말았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궁수의 신. 항아의 남편이며, 비극적인 영웅이었다. 《좌전》에는 이름이 이예(夷羿)로 기록되어 있다.)(『左傳(좌전)·襄公四年(양공사년)』 참조.)

* 奡盪舟(오탕주): 오가 배를 움직이다. 오는 한착과 예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육지에서 배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었다고 한다. 하나라 임금 소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何晏(하안), 『論語集解(논어집해)』 참조.)
- 奡(오만할 오)
- 盪(움직일 탕/씻을 탕): 씻다, 밀다, 갈마들다(서로 번갈아들다)

* 俱不得其死然(구부득기사연): 모두 제명에 죽음을 얻지 못하다.
- 俱(함께 구/갖출 구): 모두, 함께, (부사).
- 其死(기사): 자신의 천수를 다 누린 뒤에 자기가 죽게끔 운명 지어진 날에 죽는 것.
- 然(연): 단정적인 어기를 표시하는 어기조사, 역접 접속사. 焉과 같다.

* 禹(우): 순임금으로부터 나라를 물려받음. 홍수를 잘 다스려 마침내 하나라를 세웠다(기원전 2070~기원전 1600년). 중국 고대의 전설상의 국가인 하나라의 첫 임금.

* 稷(피 직/기울 측): 주나라의 시조인 기(棄)로, 후직(后稷)이라고도 한다. 전설상의 주나라 희씨의 조상이다. 신농과 함께 중국의 농업의 신으로서 숭배되고 있다. 순임금의 신하로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곡식을 재배하여 농업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컸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그의 후손이다.

* 夫子(부자): 대부 이상이 되는 벼슬 자리에 있는 사람을 칭한다. 나중에는 제자가 스승을 칭하는 말로 '선생님', '스승'의 뜻으로 쓰였다. 

* 君子哉, 若人(군자재, 약인): 군자답도다 이 사람은.
- 哉(어조사 재): 찬양, 비통함, 감개 등의 어기를 나타내는 감탄 종결사.
- 若(같을 약): '이, 이런'이라는 뜻의 지시대사. 가까이 있는 사물, 상황 등을 나타낸다.

논어 제14편 헌문 6장

논어집주 해석

남궁괄은 곧 南容(남용)이다. 羿(예)는 有窮(유궁, 국명)의 임금이니, 활을 잘 쏘아 夏后相(하후 상)을 멸하고 왕위를 찬탈했었는데, 그 신하 寒浞(한착)이 또 예를 죽이고 대신하였다. 
奡(오)는 《春秋左傳(춘추좌전)》에 澆(요)로 되어 있으니, 한착의 아들이다. 힘이 세어 육지에 배를 끌고 다녔는데, 뒤에 하후 少康(소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禹王(우왕)은 水土(수토)를 다스리고 稷(직, 후직)과 함께 씨앗을 뿌려 몸소 농사짓는 일을 하였는데, 우왕은 舜帝(순제)의 禪位(선위)를 받아 천하를 소유하였고, 稷(직)의 후손은 주나라 무왕에 이르러 또한 천하를 소유하였다. 남궁괄의 뜻은 羿(예)와 奡(오)를 당세에 권력을 소유한 자에게 비유하고, 禹王(우왕)과 稷(직)을 공자에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남궁괄의 말이 이와 같으니, 군자다운 사람이어서 덕을 숭상하는 마음이 있다고 이를 만하니, 허여(인정)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나가기를 기다려 찬미하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헌문편 6장 (논어집주, 성백효)


[#284]논어 제14편 헌문 6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남궁괄은 공자의 조카(이복형 맹피의 딸)를 시집보낼 만큼 공자의 신뢰를 받는 제자였다고 한다. 예(羿)는 하늘에 있는 해를 떨어뜨릴 만큼 활을 잘 쏘았고 오(奡)는 배를 육지에서 끌고 다닐 정도로 힘이 세었지만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하지만 우임금과 직은 단지 농사를 지었을 뿐이었는데도 천하태평성세를 이는 사람들이었음을 남궁괄이 피력하였다.

이에 공자는 힘이 세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닌 천명을 받드는 덕이 있는 사람을 조카사위인 남궁괄이 알아보자 그의 혜안을 칭찬하신 것이다.

주자의 해석을 살펴보면 남궁괄이 비유한 예와 오는 공자 당시의 세력자들을 뜻하고 우왕과 직은 공자에 비유한 것이라고 풀이를 하였다. 따라서 공자는 자신을 높인 그 말에 겸손해 하면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고 남궁괄이 그 시대를 잘 이해하며 덕을 숭상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힘과 능력보다는 덕을 숭상하는 공자. 올바른 정치는 힘보다는 덕(德)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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