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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257]논어 제13편 자로 9장: 자적위 염유복 자왈 서의재

by 스머프#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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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9장

子適衛, 冉有僕,
자적위   염유복
子曰 “庶矣哉!”
자왈    서의재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염유왈    기서의   우하가언
曰 “富之.”
왈    부지
曰 “旣富矣, 又何加焉?”
왈    기부의   우하가언
曰 “敎之.”
왈    교지

공자께서 위나라로 가실 때 염유가 수레를 몰고 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많구나!"
염유가 여쭈었다. "백성이 많은 다음에는 거기에 무엇을 더해 주어야 합니까?"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
"부유하게 된 다음에는 또 무엇을 더 해주어야 합니까?"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 冉有(염유): BC.522년 ~ BC.489년. 춘추시대 노나라 도 출신으로 자는 자유. 염유, 염자로 불리기도 함. 춘추시대 말기 공자의 제자로  염씨 삼형제(염경=염백우, 염옹=중궁, 염구=자유=염유=염자, 一門三賢) 중 막내이다. 권력과 정사에 능하고 다재다능하였으며 이재(理財)에도 밝았다고 함. 노나라의 권력자인 계강자의 재상이 되었고 계강자를 설득하여 천하 주유 중인 공자를 다시 노나라로 모셔오기도 했다. 하지만 계강자를 위해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혹독하게 거둬들이자 공자는 그를 비판하여 파문하기로 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 冉有僕(염유복): 염유가 마차를 몰다.
- 僕(종 복): 종, 심부름꾼, 남자 종. 여기서는  '마부'라는 뜻의 명사가 '마부 노릇을 하다'라는 뜻의 동사로 전용된 것이다.

* 旣庶矣(기서의): 이미 많게 되다.
- 庶(여러 서, 구제할 자): 여러, 거의. 많다는 뜻으로 쓰임.
- 矣(의): ~하게 되다. 상황의 변화나 새로운 상황의 출현을 표시하는 어기조사.

* 又何加焉(우하가언): 거기다 또 무엇을 보태는가.
- 何加(하가): 대사 목적어와 동사가 도치된 것.
- 焉(언): 於是(어시)와 같다.

* 富之(부지): 부유하게 하다.
- 富(부): 형용사가 사역동사로 전용된 것.
- 之(지): '이미 많아지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

논어 제13편 자로 9장

 

논어집주 해석

‘僕(복)’은 수레를 모는 것이다.
‘庶(서)’는 많음이다.

백성들이 많기만 하고 부유하지 못하면 백성들의 생활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田里(전리, 토지와 주택)를 마련해 주고 세금을 가볍게 하여 부유하게 해주는 것이다.

부유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禽獸(금수)에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반드시 학교를 세우고 예의를 밝혀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호 씨(胡寅(호인))가 말하였다. “하늘이 이 백성을 내실 적에 司牧(사목, 백성을 기르는 임금)을 세워 이 세 가지 일(庶(서) · 富(부) · 敎(교)를 가리킴)을 맡겨주었다. 그러나 三代(삼대) 이후로는 능히 이 직분을 거행한 군주가 백 명에 한 둘도 없었다. 한나라의 문제와 명제, 당나라의 태종은 또한 백성이 많았고 또 부유하게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西京(서경, 前漢(전한))의 교육은 알려진 것이 없고, 〈後漢(후한)의〉 명제는 師傅(사부)를 존중하고 辟雍(벽옹, 太學(태학))에 왕림해서 三老(삼로)에게 절하여 宗戚(종척)의 자제들이 배우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당나라 태종은 이름 있는 선비들을 크게 불러 모으고 생원을 增廣(증광, 증원)하였으니, 교육이 또한 지극하였다. 그러나 가르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三代(삼대)의 교육은 天子(천자)와 公卿(공경)들이 몸소 위에서 실행하여 언행과 政事(정사)가 모두 본받을 만하였는데, 저 두 군주(한명제 · 당태종)가 능히 그럴 수 있었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자로편 9장 (논어집주, 성백효)


[#257]논어 제13편 자로 9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공자가 위나라로 가는 도중에 마차를 몰게 된 염유와의 위나라 정치에 대한 내용의 대화이다. 당시 위나라는 번창하는 시기라 백성들이 많았다. 공자는 흐뭇해하시며 저 많은 백성들이 모두 잘 살아야 좋을 텐데 하면서 오고 간 문답이다. 

염유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일찍이 벼슬을 하게 되는데 노나라의 정권을 좌지우지했던 삼환 씨 중 제일 강했던 계강자의 가재가 되었다. 계강자의 밑에서 대부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염유는 마침내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걷는 등 공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행동하여 공자는 언짢은 마음을 갖게 되어 자신의 문하에서 내쳐지게 된다.

염유의 정치적 욕망을 알고 있던 공자는 우선적으로 백성들의 수가 많아야 하며 그 후에는 땅을 주고 세금을 적게 걷어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부유하기만 하고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금수에 가까워지니 반드시 교육을 통해 교화시켜야 한다고 교육의 중요성을 피력하셨다. 

제후가 정사를 잘 살펴서 나라가 여유롭다면 백성들은 당연히 숫자가 늘 것이다. 그 백성들을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고 학교를 세워 백성들을 가르쳐서 삶의 질과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백성들의 행복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고 부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참된 위정자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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