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연 20장
子張問 “士何如斯可謂之達矣?”
자장문 사하여사가위지원의
子曰 “何哉, 爾所謂達者?”
자왈 하재 이소위달자
子張對曰 “在邦必聞, 在家必聞.”
자장대왈 재방필문 재가필문
子曰 “是聞也, 非達也.
자왈 시문야 비달야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부달야자 질직이호의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찰언이관색 려이하인
在邦必達, 在家必達.
재방필달 재가필달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부문야자 색취인이행위 거지불의
在邦必聞, 在家必聞.”
재방필문 재가필문
자장이 여쭈었다.
"선비는 어떻게 하면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것이 무엇이냐?"
자장이 대답하였다. "나라 안에서도 반드시 명성이 있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명성이 있는 것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명성이 있는 것이지 통달한 것이 아니다. 통달한다는 것은 본바탕이 곧고 의로움을 좋아하며, 남의 말을 잘 헤아리고 모습을 잘 살피며, 자신을 남보다 낮추어 생각하여, 나라 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통달하는 것이다.
명성이 있다는 것은 겉모습은 인(仁)을 취하면서도 행실은 인에 어긋나고, 그렇게 살면서도 의심조차 없어서, 나라 안에서도 명성이 있고 집안에서도 명성이 있는 것이다."
* 士何如斯可謂之達矣(사하여사가위지달의): 선비는 어떠해야 비로소 그를 일러 통달했다고 할 수 있는가.
- 斯(사): ~하면 그제야. 조건에 따른 결과를 표시하는 접속사. 원래 '이렇게 되면'이라는 뜻으로 문맥에 따라 '~하면 곧' 또는 '~하면 그제야'라는 어감 즉, 현대 중국어의 這就(저취) 또는 這才(저재)의 어감을 갖는다.
- 矣(의): 의문의 어기를 표시하는 어기조사.‘達(달)’은 德(덕)이 남에게 믿어져서 행함에 얻지 못함이 없음을 이른다.
* 何哉爾所謂達者(하재이소위달자): 무엇인가 네가 말하는 바의 통달은. 爾所謂達者(이소위달자)와 何哉(하재)가 도치된 것.
- 爾(너 이): 이인칭대사.
* 在家必聞(재가필문): 대부의 식읍에서 일을 할 때 반드시 그 명성이 소문나다.
- 家(가): 개인의 집이 아니라 대부의 식읍을 가리킨다.
* 夫達也者(부달야자): 통달이라고 하는 것.
- 夫(부): 문장의 첫머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청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는 어기조사.
- 也者(야자): 음절을 조정하고 어기를 고르는 어기조사.
* 慮以下人(려이하인):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출 것을 생각하다.
- 以(이): 동작의 대상을 표시하는 전치사. 직접 목적어를 표시한다.
- 下(하): 자신을 낮추다, 겸하(謙下)하다, 겸양하다.
* 居之不疑(거지불의): (스스로) 그것에 처하여 의심치 않다, 어질다고 자처하여 의심치 않다.
- 居(거): 처하다, 자처하다.
- 之(지): 仁(인)을 가리키는 인칭대사.
논어집주 해석
子張(자장)이 외면을 힘썼으니, 夫子(부자)께서 이미 그가 발문한 뜻을 아셨다. 그러므로 도리어 詰問(힐문)해서(되물어서) 장차 그 병통을 드러내어 치료해 주려고 하신 것이다.
在邦必聞(재방필문)하며 在家必聞(재가필문): 명예가 드러남을 말한다.
聞(문)과 達(달)이 서로 비슷하나 똑같지 않음은 바로 誠(성, 진실)과 僞(위, 거짓)가 분별되는 것이니, 배우는 자가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夫子(부자)께서 이미 밝게 분별하시고 아랫글에 또 상세히 말씀하신 것이다.
안으로 충신을 주장하고 행하는 바가 宜(의, 義(의))에 합하며, 남을 대함에 살피고 겸손함으로써 자신을 기름은, 모두 스스로 안을 닦고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德(덕)이 자기 몸에 닦아져서 남들이 믿는다면 행하는 바가 저절로 막힘이 없을 것이다.
얼굴빛을 좋게 하여 仁(인)을 취하나 행실은 실제로 위배되며, 또 스스로 이것을 옳다고 여겨 忌憚(기탄)하는 바가 없으면, 이는 실제를 힘쓰지 않고 오로지 이름을 구함을 힘쓰는 자이다. 그러므로 헛된 명예가 비록 높으나 실제 德(덕)은 병든 것이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실제를 힘쓸 것이요, 명예를 가까이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명예를 가까이 함에 뜻이 있으면 큰 근본이 이미 상실되니, 다시 무슨 일을 배우겠는가. 명예를 위하여 배운다면 이는 거짓이다. 지금의 배우는 자들은 대부분 명예를 위하니, 명예를 위함과 이익을 위함은 비록 淸(청)과 濁(독)이 똑같지 않으나 이익의 마음은 똑같은 것이다.”
윤 씨(尹焞(윤돈))가 말하였다. “子張(자장)의 학문은 병통이 실제를 힘쓰지 않음에 있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씀해 주신 것이다 독실히 하는 일이었으니, 내면에 충적되어서 외면에 발로되는 것이다. 당시에 문인들이 직접 聖人(성인)의 가르침을 받았는데도 잘못됨이 이와 같음이 있었으니, 하물며 후세에 있어서이겠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안연편 20장 (논어집주, 성백효)
모든 면에 뛰어났지만 스스로의 비범함에 자만했던 자장이 유명해지는 것과 통달하는 것에 대해 혼동을 하자 공자가 그 차이점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입신출세로 훌륭한 정치가가 꿈이었던 자장은 세상에 명성으로 자자하다면 그것이 곧 모든 것에 도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자는 유명해지는 것과 통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통달한다는 것은 본질이 강직하면서 정의로움을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들으면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색까지 잘 살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남의 처지를 고려하면서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처세를 해야만 나랏일뿐만 아니라 가문의 일에도 통달하게 되는 것이다.
무릇 유명한 사람은 겉모습은 인한 사람처럼 포장하지만 실상 행동은 그렇게 하지 않는경우가 많다. 본인도 그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마치 나랏일에서도 집안에서도 명성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유명해지고자만 한다면 방법은 무수히 많다. 단지 유명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을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존경하고 따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유명무실한 사이비는 도처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