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논어 필사

[#214]논어 제11편 선진 16장: 계씨부어주공 이구야위지취렴

by 스머프# 2024. 5. 3.
반응형

선진 16장

季氏富於周公,
계씨부어주공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이구야위지취렴이부익지
子曰 “非吾徒也.
자왈    비오도야
小子, 鳴鼓而攻之, 可也.”
소자   명고이공지   가야

계씨는 주공보다 더 부유했는데, 그의 가재(家宰)인 염구가 그를 위해 세금을 거두어 모아서 그를 더 부유하게 해 주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너희들은 북을 울리며 그를 공격해도 괜찮다."


* 季氏富於周公(계씨부어주공):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하다.
- 季氏(계씨): 노나라 소공(昭公) 때의 대부 계손씨(季孫氏). 중국 춘추 시대 후기에 노나라의 정권을 장악한 귀족 가문 가운데 하나. 여기서 계씨는 계손씨 가문의 8대 종주인 계강자(계손비).
- 於(어): 비교의 대상을 표시하는 전치사.

周公(주공): 주나라 무왕의 동생으로 노나라의 제후로 봉해진 사람. 주 문공. 중국 고대 주나라의 기틀을 확립한 정치가.  대부인 계씨가 주공을 능가할 정도로 부유하다는 것은 매우 분에 넘치는 짓이다.

- 聚(모을 취): 모으다, 거두어들이다, 갖추어지다.
- 斂(거둘 렴(염)): 거두다, 넣다, 저장하다, 모으다.

* 求(구): 염구(冉求). 자는 자유(子有). 염유(冉有)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문십철의 한 사람으로 정사(政事)에 뛰어났다. 공자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계손씨의 가재(家宰)를 지낸 적이 있는데 부와 권력을 추구하고 향유하였다. 이때 그는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거두어들여 계손씨의 재산을 더욱 늘려주었다고 하여 공자에게 파문을 당했다고 한다. 

논어 제11편 선진 16장

논어집주 해석

주공은 왕실의 至親(지친)으로 큰 공이 있었고 冢宰(총재) 자리에 있었으니 그 부유함이 마땅하거니와, 계씨는 제후의 卿(경)으로서 부유함이 주공보다 더하였으니, 군주의 것을 훔쳐 빼앗고 백성들에게 긁어모으지 않았다면 어찌 이것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염구가 계씨의 가신이 되어서 또다시 그를 위해 부세를 급박하게 거두어 그의 부를 더 늘려준 것이다.

우리 무리가 아니라는 것은 그를 끊음이요, 小子(소자)들아 북을 울려 성토하라고 하신 것은 문인들로 하여금 그 죄를 성토하여 꾸짖게 하신 것이다. 악한 사람과 무리 지어 백성을 해침을 성인께서 미워하심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스승은 엄하고 벗은 친하므로 이미 끊고서도 오히려 문인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하셨으니, 또한 사람을 사랑함이 그침이 없으심을 보겠다.

범 씨(范祖禹(범조우))가 말하였다. “염유가 政事(정사)의 재주를 계씨에게 시행하였다. 그러므로 不善(불선)을 함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으니, 이는 心術(심술, 마음)이 밝지 못하여 자기 몸에 돌이켜 구하지 못하고 벼슬하는 것을 급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선진편 15장 (논어집주, 성백효)


[#214]논어 제11편 선진 16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노나라 정공 시절 공자가 대사구였을 때 당시 권력은 천자인 정공이 아니라 경대부에 불과한 삼환(환공의 자손으로 맹손씨, 숙손씨, 계손씨의 3 가문, 이중 계손씨가 수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삼환 씨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었다. 국정을 주무름은 물론 제후인 그들이 마치 천자인 것처럼 예와 악을 즐겼으며 당연히 사회질서를 어지르는 그들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 공자와는 사실상 적대관계에 있었다.

공자는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예타삼도, 예법에 의하여 삼환의 성곽을 무너트림)을 하였으나 결국 거사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 연유로 인하여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14년간 주유천하를 하게 되었지만 삼환의 정치는 뿌리 뽑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 권력을 잡은 삼환의 엄청난 부는 공자의 제자인 염구(계강자의 가재)가 백성의 재물을 세금으로 혹독하게 거두어들이는 가렴주구를 행하면서 더욱더 그들의 배를 불려 주었다. 이에 공자는 탐욕스럽고 악행을 일삼는 염유를 더 이상은 그의 제자로 거둘 수 없어 내치게 된다. 문하생들에게 염구는 파문되었으니 북을 치고 공격하며 비난을 해도 이치에 맞는다고 하신 것이다. 

염구는 재능이 있었고 꼼꼼하며 나랏일에 빼어난 인물로서 공자 역시 그를 인정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염구는 힘이 없어서 시키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를 수 없음을 죄송하게 생각하였지만 공자는 단지 그가 욕심스럽고 현재의 풍요한 생활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삼환에게 당하기만 한 공자가 염구를 내침으로써 자존심을 세웠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문헌에서 살펴보건대 실제로 염구를 파문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염유도 단지 가신일 뿐인데 위에서 시키는 일을 공자의 도에 맞춰서 일을 도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 누가 자신 있게 감히 손가락질할 수 있으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