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당 5장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집규 국궁여야 여불승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상여읍 하여수 발여전색
足蹜蹜如有循.
족축축여유순
享禮, 有容色.
향례 유용색
私覿, 愉愉如也.
사적 유유여야
규를 잡을 때에는 몸을 굽히시기를, 마치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시는 듯 조심스럽게 하셨다.
규를 잡는 법은, 위로는 읍할 때의 두 손을 마주 잡는 위치와 같게 하시고, 아래로는 남에게 물건을 줄 때 손을 내리는 위치와 같게 하셨으며, 낯빛을 바로 잡으시되 두려워하시는 듯한 빛을 띠셨고, 발걸음은 보폭을 좁게 하시면서 뒤꿈치를 끄는 듯하셨다.
가져간 예물을 제후에게 올릴 때는 부드러운 낯빛을 하셨으며,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예물을 주고받으며 사귈 때는 온화하고 즐겁게 하셨다.
* 圭(규): 옥으로 만든 홀(笏). 위는 삼각형에 가까운 반타원형이고 아래는 모가 난 길쭉한 옥기(玉器)로 제후가 천자를 만나거나 제후끼리 회동할 때 또는 사신이 다른 나라의 제후를 만날 때 손에 들던 패.
- 鞠(공 국, 국문할 국/궁궁이 궁/국화)
- 躬(몸 궁)
* 足蹜蹜如有循(족축축여유순): 발이 종종걸음 치는 것이 마치 좇아가는 것이 있는 것 같다.
- 蹜蹜(축축): 종종걸음을 치는 모양.
- 蹜(종종걸음 칠 축)
- 循(돌 순): 돌다, 빙빙 돌다, 좇다, 돌아다니다.
* 勃如戰色(발여전색): 갑자기 안색이 바뀌어 전율하는 표정이 되다.
- 勃(일어날 발/노할 발)
* 享禮(향례): 사신이 방문국 제후에게 예물을 바치는 의례.
- 享(누릴 향/삶을 팽)
* 有容色(유용색): (점잖고 체모 있는) 용모와 안색을 지니다.
- 覿(볼 적): 보다, (눈이) 붉다, 멀리 바라보다.
* 愉愉(유유): 기뻐하는 모양.
- 愉(즐거울 유)
논어집주 해석
命圭를 잡으시되 몸을 굽히시어 이기지(감당하지) 못하는 듯이 하셨으며, 〈命圭를 잡는 위치는 〉 위로는 서로 揖할 때와 같게 하시고 아래로는 물건을 줄 때와 같게 하시며, 낯빛을 변하여 두려워하는 빛을 띠시며, 발걸음을 좁고 낮게 떼시어 물건을 따르듯이 하셨다. 燕享하는 禮席에서는 온화한 낯빛이 있으셨다. 사사로이 만나보실 적에는 화평하게 하셨다.
‘圭(규)’는 제후의 명규이니, 이웃나라에 빙문 하게 되면 대부로 하여금 이것을 잡아서 신을 통하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는 것’은 군주의 기물을 잡음에 가벼운 것을 잡아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니, 공경하고 삼감이 지극한 것이다. ‘上如揖(상여읍) · 下如授(하여수)’는 규를 잡는 것이 평형을 이루어 손이 심장 부위와 가지런해서, 높아도 읍할 때의 위치를 지나지 않고 낮아도 물건을 줄 때의 위치를 지나지 않는 것이다. ‘戰色(전색)’은 조심하여 얼굴빛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蹜蹜(축축)’은 발걸음을 좁게 떼는 것이다. ‘如有循(여유순)’은 《禮記(예기)》에 이른바 “발을 들되 발꿈치를 끈다.” 는 것이니, 걸음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마치 물건을 따르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享(향)’은 물건을 드림이니, 聘問(빙문)이 끝나고 燕享(연향)을 베풀 적에 규벽을 사용하고 뜰에 각종 예물을 진열해 놓는다. ‘容色(용색)이 있다’는 것은 얼굴이 온화함이니, 《儀禮(의례)》에 이르기를 “〈燕享(연향)할 때에는〉기운을 펴 화기가 얼굴에 가득하게 한다.” 하였다.
‘私覿(사적)’은 사사로운(비공식적인) 예로 만나 보는 것이다. ‘愉愉(유유)’는 더욱 온화한 것이다.
☉ 이 한 절은 공자께서 군주를 위하여 이웃나라에 방문하신 예를 기록한 것이다.
조 씨(晁說之(조설지))가 말하였다. “공자께서 정공 9년에 노나라에서 벼슬하시고, 13년에 이르러 제나라에 가셨으니, 그 사이에 조회하거나 聘問(빙문)하여 타국에 왕래하신 일이 전혀 없다. 의심컨대 擯(빈) · 相(상)이 되고 명규를 잡는 두 조항은 다만 공자께서 일찍이 그 예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말씀하신 듯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향당편 5장 (논어집주, 성백효)
공자가 임금을 위하여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군주 앞에서의 예(禮)를 행한 모습이다.
규(圭)는 왕과 신하가 대면할 때 권위를 상징하던 작은 막대기 혹은 지팡이를 의미한다. 글자를 보면 흙 토(土) 자가 두 개를 겹친 모양으로 임금이 제후에게 땅을 하사한다는 뜻으로 이 규(圭)를 주었다고 한다. 홀(笏)은 신하가 들고 규는 왕이 들었다. 홀이란 잊어버리지 않게 기록하기 위하여 손에 드는 것인데 끝이 각진 네모이고 규는 끝이 삼각형으로 뾰족하다. 고대 중국에서부터 쓰였다고 하며 직위에 따라 만드는 재질이나 크기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또한 옥으로 만든 홀(笏)을 규(圭/珪)라고도 한다. 위 끝은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졌다. 옛날 중국에서 천자(天子)가 제후를 봉하거나 신을 모실 때에 썼다. 언제부터인가는 분명하지 않으나 제후뿐 아니라 그 아래의 대부들의 품계를 나타내는 복식의 일부가 되었다.
외국의 사신으로 나가 규를 잡음은 곧 본인 국가 군주의 신표이므로 공경스럽고도 극진하게 조심 스러이 잡아야 한다. 규(홀)를 잡는 위치는 위로는 받들어 올리는 읍하는 자세이고 아래로는 예물을 남에게 주는 자세이다. 상대방 군주를 공경스럽게 대하며 얼굴빛은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보이게 하고 발걸음을 좁게 떼어 마치 뒤꿈치를 끄는 듯이 조심조심 걸어 공손함을 보였다. 또한 관리들과 사적으로 어울릴 때에는 부드럽고 온화한 낯으로 대화를 하며 예에 어긋남이 없도록 행동했다는 것이다.
공자께서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신 일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국가 간의 접견에 대한 의전행사는 위와 같이 하는 것이 예에 어긋남이 없는 것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