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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79]논어 제9편 자한 29장: 자왈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by 스머프#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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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한 29장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자왈    가여공학   미가여적도   
可與適道, 未可與立, 
가여적도   미가여립   
可與立, 未可與權.”
가여립   미가여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함께 도(道)로 나아갈 수는 없고,
함께 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도 입장을 같이 할 수는 없으며,
입장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른 판단을 함께 할 수는 없다."


 * 未可與適道(미가여적도) : 아직 함께 도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다.
 - 與(줄 여/더불 여) : 함께 하다, 같이 하다. 다음에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 適(맞을 적): 나아가다.

 * 可與立(가여립) : 함께 설 수 있다.
 - 立(립) :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입장을 고수하여 외부적인 힘에 의하여 흔들리는 일이 없음을 말한다.

未可與權(미가여권) : 아직 함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
 - 權(권세 권/임기응변의 권) : 변통하다, 융통하다. 저울에 달다, 무게를 달다, 경중을 재다.
 ** 권도(權道) : 목적 달성을 위하여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변통(變通)하여 일을 처리하는 방도. 수단은 옳지 못하나 목적은 정도에 부합하는 처리 방식 또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편. 사물과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

논어 제9편 자한 29장


논어집주 해석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더불어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道에 나아갈 수는 없으며, 함께 道에 나아갈 수는 있어도 함께 설 수는 없으며, 함께 설 수는 있어도 함께 權道를 행할 수는 없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더불어 함께 배운다.’는 것은 구할 바를 아는 것이요, ‘함께 道(도)에 나아간다.’는 것은 나아갈 바를 아는 것이요, ‘함께 선다.’는 것은 뜻을 독실히 하고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것이다. ‘權(권)’은 저울의 추이니, 물건을 저울질하여 경중을 아는 것이다. ‘함께 權道(권도)를 행한다.’는 것은 일의 경중을 저울질하여 의리에 합하게 함을 이른다.”

양 씨(楊時(양시))가 말하였다. “자신을 위한 학문〔爲己之學(위기지학)〕을 알면 더불어 함께 배울 수 있고, 학문이 충분히 善(선)을 밝게 알 수 있은 뒤에야 함께 道(도)에 나아갈 수 있고, 도에 대한 믿음이 돈독한 뒤에야 함께 설 수 있고, 때에 맞게 조처할 줄을 안 뒤에야 함께 權道(권도)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홍 씨(洪興祖(홍흥조))가 말하였다. “《周易(주역)》의 아홉 卦(괘)가 ‘巽(손)으로 권도를 행한다.’는 말로 끝마쳤으니, 권도는 聖人(성인)의 큰 用(용)이다. 능히(제대로) 서지 못하면서 권도를 말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서지도 못하면서 걷고자 하는 것과 같아서 넘어지지 않는 자가 드물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한나라 儒者(유자)들은 經道(경도, 常道(상도))를 뒤집어 도에 합하는 것을 권도라고 하였다. 이러므로 權變(권변) · 權術(권술, 권모술수)의 말이 있었으니, 이는 모두 잘못이다. 권도는 다만 경도일 뿐이니, 漢(한) 나라 이후로 權(권) 자의 뜻을 안 사람이 없다.”

내(주자)가 살펴보건대, 先儒(선유)들이 잘못하여 이 장을 아래의 ‘偏其反而(편기번이)’와 연결시켜서 한 장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경도를 뒤집어 도에 합한다.’는 말이 있게 되었으니, 정자가 이를 잘못이라 하신 것이 옳다. 그러나 《孟子(맹자)》에 ‘嫂(수, 형수와 제수)가 물에 빠졌을 경우에는 손으로 구원해 준다.’는 뜻으로 미루어 본다면 권도와 경도는 또한 마땅히 분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한편 29장 (논어집주, 성백효)


[#179]논어 제9편 자한 29장: [『論語』,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 함께 같이 배운다는 것은 구할 바를 아는 것이요,
 [] 함께 도에 나아간다는 것은 나아갈 바를 아는 것이요,
 [] 함께 선다는 것은 뜻을 독실히 하고 굳게 지켜 변하지 않는 것이다.
 [] 권은 저울의 추이니, 물건을 저울질하여 경중을 아는 것이다. 함께 권도를 행한다는 것은 어짊의 경중을 저울질하여 의리에 합하게 함을 이른다.” [정이, 송나라 성리학자]

같은 공부를 하여도 도를 추구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간다고 해도 각자의 이상에 따라 목표에 이르는 길은 다를 수 있다.  또한 같은 상황에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가치관이나 사고하는 방식에 따라 같은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즉 모두가 똑같은 곳에 도달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과 일치하는 판단과 행동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판단의 기로에 서서 자신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나와 판박이 같은 사람은 없지만 살아가다 보면 그래도 나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보다 지혜롭고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수양과 배움에의 열망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나만이 옳다는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겸허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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