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한 10장
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안연위연탄왈 앙지미고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찬지미견 첨지재전 홀언재후
夫子, 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부자 순순연선유인 박아이문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약아이례 욕파불능 기갈오재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여유소립탁이 수욕종지 말유야이
안연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파고 들어갈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면 앞에 계신 듯하다가 어느새 뒤에 와 계신다.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들을 잘 이끌어 주시어서, 학문으로 우리를 넓혀 주시고, 예의로써 우리를 단속해 주신다.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으니, 이미 나의 재주를 다 하여도, 선생님께서 세워 놓으신 가르침은 우뚝 서 있는 듯하다. 비록 그것을 따르고자 해도 따라갈 수가 없구나."
* 彌(미) : 두루, 널리, 오래다, 더욱.
* 鑽(찬) : 끌, 뚫다, 파다, 구멍을 내다. 종지뼈를 자르는 형벌.
* 瞻(참) : 바라보다, 쳐다보다, 우러러보다.
* 徇徇(순순) : ‘차례대로 천천히’의 뜻
- 徇(순) : 주창하다, 호령을 내리다, 군령을 내리다.
* 卓(탁) : 높다, 세우다.
논어집주 해석
顔淵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夫子의 道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홀연히 뒤에 있도다.
夫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 禮로써 나의 행실을 요약하게(묶게) 해주셨다.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서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夫子의 道가〉 마치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비록 이것을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데가 없도다.”
‘喟(위)’는 탄식하는 소리이다.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다.’는 것은 미칠 수 없는 것이요,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다.’는 것은 들어갈 수 없는 것이요,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다.’는 것은 황홀하여 어떻게 형상할 수 없는 것이니, 이는 안연이 夫子(부자)의 道(도)가 무궁무진하고 또 方所(방소)와 형체가 없음을 깊이 알고 감탄하신 것이다.
‘循循(순순)’은 次序(차서)가 있는 모양이다. ‘誘(유)’는 이끌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文(문)으로써 지식을 넓혀 주고 禮(예)로써 행실을 요약하게 함은 가르침의 순서이다. 夫子(부자)의 道(도)가 비록 높고 묘하나 사람들을 가르침에 순서가 있음을 말씀한 것이다.
후 씨(侯仲良(후중량))가 말하였다.
“‘文(문)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었다.’는 것은 致知(치지) · 格物(격물)이요, ‘禮(예)로써 나의 행실을 요약하게 해 주었다.’는 것은 克己復禮(극기복례,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감)이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이는 안자가 聖人(성인)을 일컬음에 가장 적절하고 합당한 곳(부분)이다. 성인이 사람을 가르침은 오직 이 두 가지일 뿐이다.”
‘卓(탁)’은 우뚝이 서 있는 모습이다. ‘末(말)’은 없음이다. 이는 안자가 그 배움이 이른 경지를 스스로 말씀한 것이니, 기쁨이 깊고 힘씀이 극진하여 道(도)를 봄이 더욱 가까우나 또한 그 힘을 쓸 데가 없는 것이다.
오 씨(吳棫(오역))가 말하였다.
“이른바 ‘卓爾(탁이, 우뚝 히 서 있다)’라는 것은 일상의 행하는 일 사이에 있는 것이요, 이른바 ‘깊고 어두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이러한 지위(경지)에 이르면 공부가 더욱 어려우니, 바로 〈벼랑처럼〉 峻絶(준절)하고, 또 대단히 힘을 쓰려고 해도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양 씨(楊時(양시))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善人(선인)에서부터 채워서 대인에 이르기까지는 力行(역행)을 쌓아서 될 수 있지만, 대인이면서 化(화)한 聖人(성인)으로 말하면 역행으로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안자가 〈성인의 경지에〉 한 사이(칸)를 이르지 못한 이유이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이것은 안자가 공자를 깊이 알고 잘 배운 것이다.”
호 씨(胡寅(호인))가 말하였다. “안자가 〈앞에〉 아무 일이 없이 깊이 감탄하였으니, 이는 안자가 배움에 이미 터득한 바가 있었으므로, 먼저 어려웠던 까닭과 뒤에 터득하게 된 연유를 말씀하고 그 功(공)을 聖人(성인)에게 돌린 것이다. 높고 견고하며 앞에 있고 뒤에 있다는 것은 道(도)의 본체를 말한 것이요, 우러러보고 뚫으며 바라보고 홀연하다는 것은 그 요점을 알지 못한 것이다.
夫子(부자)께서 차근차근히 잘 이끄시어 먼저 나를 文(문)으로써 박학하게 하시어 나로 하여금 고금의 역사를 알고 일의 변고를 통달하게 해 주셨고, 그런 뒤에 나의 행실을 禮(예)로써 요약하게 하시어 나로 하여금 배운 것을 높이고 아는 것을 행하게 하여, 마치 길을 떠난 자가 집에 달려오고 밥 먹는 자가 배부르기를 구하는 것과 같게 하셨다.
이 때문에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가 없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조금도 쉬지 않았다. 이렇게 한 뒤에야 夫子(부자)의 선 바가 우뚝함을 보고 비록 따르고자 하였으나 말미암을 데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따르는 바를 게을리하지 않아 반드시 우뚝이 서 있는 경지에 이르기를 구한 것이다. 〈안자의〉 이 탄식은 ‘이 말씀에 종사하겠습니다.〔請事斯語(청사사어)〕’라고 한 뒤와 ‘3개월을 仁(인)을 떠나지 않았다.〔三月不違仁(삼월불위인)〕’고 한 때에 있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한편 10장 (논어집주, 성백효)
공자에 대한 안연의 존경심과 경외심을 표현한 장이다.
공자만큼 배움을 좋아하는 이가 또 있었으니 공자의 애제자인 안연(顔淵)이었다. 현명하고 똑똑하며 그날의 할 일을 미루지 않았던 안연은 공자바라기로서 그의 제자가 된 후로 공자의 끝없는 학문의 경지를 흠모하며 존경하였다. 열심히 따라가려고 하나 어느새 보면 앞에 우뚝 서있고 그러면서도 뒤돌아 점검까지 해주시며 공부를 등한시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스승에게 한없는 존경을 보였다.
30대에 요절한 안연은 그의 운명을 읽기라도 한 것이었는지 공자의 무한한 학문에의 열정을 평생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감탄 및 탄식을 하였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천재라 하여도 열심히 매진하는 것에 꾸준함을 더한 이들을 앞서 나갈 수는 없다. 물론 천재가 노력까지 한다면야 비교불가이겠지만 공자는 혹시 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공자의 위대함을 절대로 반박할 수 없다.
공자는 성인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박학다식에 다재다능한 인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학자였기에 지금까지도 그를 흠모하고 그의 사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러한 존경스러운 스승들이 많아야 청출어람의 제자들이 많이 나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