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11장
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자왈 여유주공지재지미
使驕且吝, 其餘不足觀也已.”
사교차인 기여부족관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만약 주공처럼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불 것이 없다.
* 周公 (주공) : 중국 고대 주나라의 기틀을 확립한 정치가. BC 1100년 ~ 미상. 산시(陝西)성 치산(岐山) 사람으로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단(旦)이다. 숙단(叔旦)이라고도 하며 주 문공(文公)으로도 불린다. 주 문왕 희창(姬昌)의 넷째 아들이고, 무왕 희발(姬發)의 이복동생이다.
주 무왕을 도와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를 멸망시키고, 동이(東夷)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무왕이 죽은 뒤에는 어린 조카 성왕(희송)을 도와 7년간의 섭정을 하여 주 왕조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주나라의 정치 · 사회 제도는 중국 북부 전역에 확고히 수립되었고 당시 구획된 행정조직은 후대 왕조들의 모범이 되었다.
중국 고대의 문물과 문화발전이 그의 손에 의해 다듬어졌다는 평가와 함께 유학자들이 그를 성인(聖人)으로 받들었다. 공자도 그를 후세의 황제들과 대신들이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으로 삼아야 할 인물로 격찬하였다.
주공의 저서로 예악(禮樂)을 정리하고 법도를 제정하여 주 왕실의 제도와 문물을 정리한 『주례』를 들기도 하나 원전은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것은 한나라 때 정리된 것으로 추정한다.
강태공, 소공 석(奭)과 함께 주나라를 창건한 공신으로 산둥(山東) 성 취푸(曲阜)에 봉해져 제후국 노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 周公之才之美 (주공지재지미) : 주공의 재능의 훌륭함, 즉 주공처럼 훌륭한 재능.
논어집주 해석
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周公의 재주와 같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더라도 가령 교만하고 또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
‘才美(재미)’는 지능과 기예의 아름다움을 이른다. ‘驕(교)’는 자랑함이고, ‘吝(린)’은 비루하고 인색함이다.
정자(伊川(이천))가 말씀하였다. “이는 교만함과 인색함의 불가함을 심히 말씀한 것이다. 주공의 德(덕)이 있으면 자연 교만함과 인색함이 없겠지만, 만일 단지 주공과 같은 才藝(재예)만 있고,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또한 족히 볼 것이 없는 것이다.”
또 말씀하였다. “驕(교)는 기운이 차 있고, 吝(린)은 기운이 부족하다.”
내가 생각하건대, 교와 린은 비록 기운이 차고 부족한 차이가 있으나 그 형세가 항상 서로 연관된다. 교만은 인색함의 지엽이고, 인색은 교만함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천하 사람들에게 징험해 보니, 교만하고서 인색하지 않은 자가 없고, 인색하고서 교만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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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태백편 11장 (논어집주, 성백효)
공자가 평생 동안 존경하고 흠모했던 주공은 탁월한 능력과 비범한 자질로 유가들에 의해 고대 중국의 최고 성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이다. 형이자 천자인 무왕의 스승노릇을 했을 만큼 그의 인품과 자질이 뛰어났다고 한다. 주공은 인재를 중요시했는데 머리를 감다가도 3번씩이나 머리를 쥐고 나와 사람을 반기고 밥을 먹다가도 세 번 뱉어내면서까지 손님 접대를 했다는 고사는 유명하다.
또한 주 성왕을 위한 섭정기간에도 막강한 권력으로 조카를 밀어내고 왕위 찬탈을 노릴 수 있었으나 그 길을 선택하지 않는 충성심을 보였고 다른 형제들(성왕의 삼촌들)의 왕위를 빼앗기 위한 반란조차도 신속하게 진압을 하였다. 이러한 주공을 공자는 바람직한 이상형의 모델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주공 같은 모든 재능과 업적이 있다 해도 그런 사람이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더 볼 것도 없다는 이야기이다. 잘난 척하고 무례하고 타인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며 거기에다가 인색하기까지 하다면 유아독존 밖에 더 되겠는가. 그런 사람은 존경할 가치가 없다. 실력과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당장은 억지로 대우를 받을 수 있지언정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의 곁에 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름지기 잘난 자, 있는 자일수록 더욱 더 겸손하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