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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30] 논어 제8편 태백 1장: 기가위지덕야이의

by 스머프#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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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1장

논어 제8편 태백 1장

태백 1장
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자왈    태백   기가위지덕야이의    삼이천하양    민무득이칭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백은 지극한 덕을 지닌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끝내 천하를 양보하였지만 백성들은 그를 칭송할 길이 없었다"


* 泰伯 (태백) : 오태백(吳太伯)을 이르는 이름으로 성은 희(姬)이고, 씨(氏)는 오(吳), 이름은 태백(泰伯)이다. 太白(태백)으로도 쓴다.
주나라(은나라의 제후국)의 선조인 태왕(太王,고공단보,古公亶父)의 맏아들. 태왕이 세 아들 중 현명한 막내아들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하자, 둘째 동생(중옹, 仲雍)을 데리고 집을 떠나 숨었다.  왕이 된 계력이 낳은 아들(창, 昌)이 뒤에 문왕이 되었고, 문왕의 아들 무왕은 은나라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여 천자국인 주나라를 세웠다.

* 至德也已矣 (지덕야이의) : 지극한 덕뿐이다. 다른 재주를 가지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오직 지극한 덕을 지니고 살았음을 강조한 말이다. 

* 三以 (삼이) : 글자 그대로 '세 번'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주희의 의견을 따라 '끝내 사양함'을 강조한 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無得而稱 (무득이칭) : 칭송할 방도를 얻지 못하다.


논어집주 

 泰伯(태백)은 주나라 태왕의 장자이다. ‘至德(지덕)’은 德(덕)이 지극하여 다시 더할 수 없음을 이른다. ‘세 번 사양함’은 굳이 사양함을 이른다. ‘칭송할 수가 없게 하였다’ 함은 그 사양함이 은미 하여 자취를 볼 수 없는 것이다. 

太王(태왕)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는 태백이고 다음은 仲雍(중옹)이고 다음은 季歷(계력)이다. 태왕의 때에 상나라의 道(도, 정치)가 점차 쇠퇴하고 주나라는 날로 강대해졌으며, 또 계력이 아들 昌(창)을 낳았는데 聖德(성덕)이 있었다. 이에 태왕은 이로 인하여 상나라를 칠 생각이 있었는데 태백이 따르지 않으니, 태왕은 마침내 왕위를 계력에게 전하여 昌(창)에게 미치고자 하였다. 

태백은 이것을 알고 곧 중옹과 함께 荊蠻(형만)으로 도망하였다. 태왕은 마침내 계력에게 나라를 물려주어 昌(창)에 이르러 천하를 셋으로 나눔에 3분의 2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이가 바로 文王(문왕)이요, 문왕이 죽고 아들 發(발)이 즉위하여 마침내 상나라를 이기고 천하를 소유하니 이가 바로 武王(무왕)이다. 

태백의 덕으로, 상나라와 주나라의 교체시기를 당하여 진실로 제후들에게 조회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는데, 마침내 버리고 취하지 않았으며 또 그 자취를 泯滅(민멸)하였으니, 그 덕의 지극함이 어떠한가. 그 마음은 바로 伯夷(백이)와 叔齊(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상나라 정벌을 諫(간)하던 심정이었으나 일의 난처함은 그보다 더 심하였으니, 夫子(부자)께서 탄식하고 찬미하심이 마땅하다. 태백이 태왕의 뜻에 따르지 않은 사실은 《春秋左傳(춘추좌전)》에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태백편 1장 (논어집주, 성백효)


[#130] 논어 제8편 태백 1장


논어의 8번째 태백편의 시작이다.

'태백편'이라 이름을 붙인 것은 논어 모든 편에서 그렇듯이 '자왈'을 제외하고 처음에 나오는 단어를 따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논어의 제자들은 존경스럽게도  쿨하게 제목을 붙였다. 블로그 등 제목 정할 때 키워드니 뭐니 해서 골머리를 싸매는 지금 시대에서 보면 짱짱!이다.  

태백 1장은 조선 태종이 3남인 충녕대군을 왕으로 점찍은 것을 알고 정신 나간 역할을 한 양녕과 출가하여 스님이 된 효령대군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도 태왕이 셋째 계력의 아들인 창이 앞으로 천하를 평정할 뛰어난 인물임을 알고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하였다. 그런 부왕의  마음을 태백이 눈치를 채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둘째와 함께 형만(荊蠻, 이민족들이 살던 양자강 이남 지역) 지방으로 피하여 은둔하였다. 후에 태백은 형만 지역의 왕이 되어 오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태백 본인이 장남이었으므로 당연히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으나 끝까지 사양(또는, 세 번이나 사양)하여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한 그 덕을 지극히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욕심을 버리고 백성들조차 모르게 은밀히 왕위를 고사했으므로 칭송조차 받지 못하였다고 한 것이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한 듯.

부왕인 태왕도 역시 대단한 인물이다. 셋째 아들의 아들이 앞으로 천하를 평정할 것임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왕은 하늘이 점지하여 타고난다고 하더니 역시 아무나 왕이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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