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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27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34장: 자질병 자로청도

by 스머프# 2024.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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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7편 술이 34장

논어 제7편 술이 34장

술이 34장
子疾病,  子路請禱. 
자질병    자로청도
子曰 “有諸?”     
자왈   유저

子路對曰 “有之. 誄曰 '禱爾于上下神祇.'” 
자로대왈    유지   뇌왈   도이우상하신기
子曰 “丘之禱久矣.”
자왈    구지도구의

공자께서 병환이 심해지시자 자로가 기도드릴 것을 청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선례가 있느냐?"
자로가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뇌문에  '너를 위하여 하늘과 땅의 신께 기도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기도를 드려온 지 오래되었다."


* 疾病 (질병) : 병이 심해지다
* 有諸 (유저, 유제) : 有之乎(유지호)? 그런  선례가 있는가?
* 誄(애도할 뢰/뇌) : 뇌문(誄文)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명복을 비는 말이나 글이다.
* 上下神祇 (상하신기) : 위와 아래의 신. 즉 하늘의 신(天神)과 땅의 신(地祇)


논어집주 해석

‘禱(도)’는 귀신에게 기도하는(비는) 것을 이른다. ‘有諸(유제)’는 ‘이러한 이치가 있는가?’ 하고 물은 것이다.
 ‘誄(뇌)’는 죽은 이를 애도하여 그의 행실을 서술한 글이다. 
‘上下(상하)’는 하늘과 땅을 이르니, 하늘의 神(신)을 ‘神(신)’이라 하고 땅의 神(신)을 ‘祇(기)’라 한다. 

기도는 잘못을 뉘우치고 善(선)으로 옮겨가 신의 도움을 비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가 없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으며, 이미 이런 이치가 있다면 聖人(성인)은 일찍이 잘못이 없어 옮겨갈 만한 선이 없어서 평소의 행실이 진실로 이미 神明(신명)에 합한다. 그러므로 ‘나는 기도한 지가 오래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또 《禮記(예기)》〈士喪禮(사상례)〉에 “병이 위독하면 五祀(오사)의 神(신)에게 기도한다.” 하였으니, 이는 臣子(신자)의 절박한 情(정)이 그대로(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이고 애당초 病者(병자)에게 청한 뒤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자로에게 곧바로 거절하지 않으시고, 다만 기도를 일삼을 것이 없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술이편 34장 (논어집주, 성백효)


#127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34장


      공자가 70이 넘어서 중병에 걸렸을 때의 자로의 애틋한 마음이 엿보이는 장이다. 더불어 공자는 천명을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한 심경을 보여준다. 여기서 질병이라 함은 심하게 아픈 중병을 일컫는다. 자로는 스승이 아프자 천지신명께 기도라도 드려봐야겠다고 청하며 뇌문을 예로 대답을 한다. 뇌문이란 원래 공이 있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애도하는 추도문 같은 것이라 그런 예가 있었느냐고 공자가 물은 것이다. 

그런데 단지 평범한 '너를 위하여 하늘과 땅의 신께 기도하노라' 하는 뇌문을 얘기하니 자로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완곡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공자는 70이 넘어서 살아온 나날을 뒤돌아보며 자신에 대한 간단한 자서전을 남긴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세계관을 확립하였으며, 마흔 살에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쉰 살에는 하늘이 준 사명을 알게 되었다. 육십 대에는 무슨 일이든 순조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칠십이 넘자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해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위정편 4장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이다. 따라서 죽음이 다가온다면 천명에 따라 순종적으로 받아들이지 특별히 기도까지 하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이미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의 명을 따라 살아왔으므로 불필요하다는 말씀을 돌려서 하셨다. 

아마도 이렇게 노환으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자로가 위나라 난리에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73세 즈음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위장공이 자로의 시신을 젓갈로 담근 후 그 단지를 공자에게 보냈다고 하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사랑하는 애제자인 안회의 요절 때도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하며 통곡을 하셨고 자로의 죽음 역시 하늘이 나를 버린다고 하시며 애절하게 통곡하셨다 하니 노쇠한 몸과 마음이 어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자로의 시신을 장사지내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면의 길로 가셨다. 

죽음을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되어 있는 자세, 요즘의 우리에게는 웰다잉이라 할 수 있다. 늘 현실의 삶에 충실하며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실천적인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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