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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11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18장

by 스머프#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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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7편 술이 18장

 

술이 18장
葉公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섭공문공자어자로    자로부대.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자왈    여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악이망우   부지노지장지운이.

섭공이 자로에게 공자에 대하여 물었는데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째서 '그의 사람됨은 무언가에 의욕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고, 도를 즐기느라 근심을 잊어, 늙음이 곧 다가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葉公(섭공) : 춘추 시대 초(楚) 나라의 심저량(沈諸梁)을 일컫는 말. 자는 자고(子高)인데, 초의 섭(葉) 땅을 다스렸던 영주로서 내외의 신망을 크게 얻고 있었던 인물이다. 섭공은 평소 용을 좋아해서  자신의 온갖 물품에 용을 그려 넣고 집의 벽까지 용으로 새겨 넣었다. 하늘의 용이 그것을 듣고 그 집에 내려와 창문에 머리를 들이밀고 마루에 꼬리를 끄니, 섭공이 놀라며 두려워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여기서 섭공호룡이라는 말이 나왔다. 섭공호룡(葉公好龍)은 겉으로는 좋아하는 척하지만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발분망식 (發憤忘食) : 끼니까지도 잊을 정도로 어떤 일에 열중하여 노력함. 열정과 헌신을 상징하는 표현.


논어집주 해석

葉公(섭공)은 초나라 葉縣(섭현)의 尹(윤)인 沈諸梁(침제량)으로 자가 子高(자고)이니, 참람하여 公(공)이라 칭한 것이다. 섭공이 공자를 알지 못하여 반드시 묻지 않아야 할 것을 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로가 대답하지 않은 것이리라. 아니면 또한 聖人(성인)의 德(덕)이 실로 쉽게 형용하여 말하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인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하면 분발하여 먹는 것도 잊고, 이미 터득하면 즐거워하여 근심을 잊어서 이 두 가지를 가지고 힘써 날마다 꾸준히 노력해서 年數(년수)가 부족함을 알지 못하니, 이는 다만 학문을 좋아함이 독실함을 스스로 말씀했을 뿐이다. 그러나 깊이 음미해 보면 그 전체가 지극하여 순수함이 또한 그치지 않는 妙(묘)가 聖人(성인)이 아니면 미칠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릇 夫子(부자)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것이 대체로 이와 같으니,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생각을 다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술이편 18장 (논어집주, 성백효)


#111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18장


      공자가 14년 주유 생활을 하는 63-64세 일 때, 채 땅을 떠나 초나라의 섭 지역에 이르렀다. 그 지역의 영주인 섭공이 자로에게 당신의 스승은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이에 자로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림자도 밟지 못하는 존경하는 스승에 대해 함부로 논할 수 없었거나 섭공의 물음에 무례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늘 겸손하고 예의에 어긋남이 없는 태도를 고수했지만 자신의 호학하는 정신에는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은 아주 작은 마을에 태어났지만 자신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공자는 무언가에 의욕이 생기면 끼니를 잊고 몰입하며, 추구한 바를 얻었을 때는 보람을 느끼며 근심을 잊고 이를 즐겼다고 하셨다. 또한 늙음이 장차 도래하고 있어도 이를 실천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셨다고... 신선(神仙)?

망우(忘憂), 걱정 근심을 잊는다는 뜻, 뜬금없이 망우리공동묘지가 생각난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지금의 행정구역명은 망우동이 되었고 망우묘지공원, 망우리공원을 거쳐, 2022년에는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서울의 대표역사문화공원으로 변경되었다. 공동묘지일 뿐만 아니라 산책 및 조깅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도 활용되는 곳이다.

묘지가 들어선다는 것은 그만큼 경관이 뛰어나 풍수지리가 높이 평가되는 곳이라는 뜻.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본인의 능지를 잡기 위해 무학대사와 함께 자리를 답사하고 환궁하던 중 지금의 망우리 고개에 올라 "내가 이 땅을 얻었으니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라고 경탄한 데서 '망우리(忘憂里)'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후에 태종에 의해 조선왕조 최초의 왕릉인 건원릉(동구릉)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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