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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필사

[101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7장

by 스머프#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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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제7편 술이 7장

 

술이 7장
子曰 “自行束脩以上, 吾未嘗無誨焉.”
자왈    자행속수이상   오미상무회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육포 한 묶음 이상의 예물을 갖춘 사람이라면, 나는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


* 束(속) : 묶을 속,  약속할 속. 포(脯) 10개를 의미
● 束手無策 (속수무책)

* 脩(수) : 포(脯) 수, 묶을 수, 술잔 유, 고을 이름 조, 쓸쓸할 소 

* 束脩(속수): 육포 한 묶음. 이것 당시에는 사람을 처음 찾아갈 때 갖추는 최소한의 예물이다.

* 未嘗 : 일찍이 ~한 것이 없다.      - 嘗 : 맛볼 상

* : 가르칠 회

‘脩(수)’는 脯(포)이니 10개를 束(속)이라 한다.
옛날 서로 만나볼 적에 반드시 예물을 들고 가서 예의로 삼았으니, ‘한 속의 포’는 지극히 적은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적에 똑같이 이 性理(성리)를 갖추었다.

그러므로 聖人(성인)이 사람에 대하여 善(선)에 들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으나 다만 상대방이 찾아와서 배울 줄을 모르면 가서 가르쳐 주는 禮(예)는 없다. 그러므로 만일 예를 갖추고 찾아오면 가르쳐 주지 않음이 없으신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술이편 7장 (논어집주, 성백효)

 

#101일 차 논어 제7편 술이 7장

 

   공자는 무사인 부친 숙량흘과 부친의 친구 딸인 안징재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3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가 공자를 키웠다. 사생아이기 때문에 귀족의 자손으로 인정받지 못해 유산은 없었으며 모친마저 눈이 멀어 생활 형편이 몹시 어려웠다. 그래서 공자는 온갖 거친 일과 천한 일을 하면서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다. 

모친이 33세에 돌아가시고 19세에 결혼, 20세에 아들 리를 얻었다. 어려운 형편에 스승에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공자는 모든 사람에게서 배우려고 노력하였다. 주나라의 노자를 찾아가서 배운 기록이 여러 문헌에 나온다. 이런 사정을 만년에 공자는 "15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30살에 섰다"라고 술회한다. 

30대가 되자 누구보다 박식하게 된 공자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중국의 역사상 최초의 학교를 연 것이다. 노나라의 돈 많은 대부의 자손을 가르친 것은 몇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평민 등 어려운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한 까닭도 본인의 불우한 어린 시절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기 한 묶음만 받고도 교육을 시켰다고 전하는데 공자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다른 집에 처음 찾아갈 때의 최소한의 예물을 받았다는 것은 예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짜일 경우 교육 자체에 대한 책임감과 교육 효과를 고려한 듯싶다. 수업료 무료인 경우는 열의가 떨어질 수도 있고 또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한 배려일 수도 있고. 


誨而不倦 (회이불권)

 가르쳐주는데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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